"관찰(觀察)"의 뜻을 새로 정립해 본다.
觀察을 직역하면, 본다(觀)와 살핀다(察)의 복합어 이다.
합쳐서 "살펴 본다" 하거나 "보고 살핀다" 할 수도 있겠다.
사전에는 "관찰(觀察)"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를 주의하여 잘 살펴봄" 이라고.
이와 같은 뜻 에는 다음과 같은 결함이 있지만 아는 이 드물다.
첫째, 주체 즉 관찰자가 사람의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그저 "그 어떤 사람" 이라고 짐작되고 있을 뿐 이다.
그 어떤 사람이 "내가 관찰자"라고 한다고 알 뿐 이다.
그 "내'라는 호칭이 자칭(自稱)인지, 타칭(他稱)인지도 불명이다.
설사 자칭이라도 스스로(自) 깨닫지(覺) 못 하여(不覺), 저(自) 아닌
것(他)을 저(自)인줄 착각에 빠지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둘째, 글자의 뜻이 매우 유사한 "본다"(觀)와 "살핀다"(察 =살펴 본다)의 뜻을
구별하지 않고(못 하고?) 있다.
한자의 본 고장 중국에서는 다르게 쓸 것 같은데.......
셋째, (주체의 정체를 모르니) 관찰의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 운운하니, 두뇌 외부가 대상인줄 알고 있지만....
넷째, 관찰의 목적(누구의 무엇을 위하여 관찰한다는)이 빠져 있다.
목적이 없거나 애매 모호하면 "관찰을 잘 해야 한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이하에서 관찰(觀察)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정립해 보이고자 한다.
관(觀) : 사람의 두뇌 속에 있는 정신(내 自神)이, 그 앞에 등장해 있는 의식(意識)을
마주 대(對)하여 안다(知)는 뜻 이다.
찰(察) : 사람의 두뇌 속에 있는 정신(내 自神)이, 두뇌를 상대로 질문이나 명령을 하여
감각기관(5官)을 움직여서 실제 정보(現識)를 획득하여 떠 올리고(사전의 뜻과 유사),
사고기관을 움직여서 기억정보(憶識)를 떠 올리고, 가상정보(想識)를 형성하여
떠 올리고, 그런 정보(識)들을 자료로 하여 [자기의 삶에 안전, 건강, 순탄, 조화를
도모하기 위하여]라는 목적(目的)을 구현하기 위하여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
등을 한 다음에 사고(思考) 과정을 거쳐서 의사들을 형성해 놓고 수시로 필요에
따라서 그 것들을 떠 올려서 관(觀 = 볼, 알) 할수 있게 차려 놓는다는 뜻 이다.
관(觀)은, 앞에 있는 의식을 대하여 그저 안다는 뜻 이고,
찰(察)은, 대하여 알 수 있겠금 차려 놓는다는 뜻 이고,
찰(察)해 놓은 것을 대하여, 즉 차려(察해) 놓고서 아는(觀) 일이 관찰(觀察)이다.
예컨대, 혼자 방 안에 누워 있는데 어떤 기억이 하나 떠 올라서 아는 것이 관(觀)이고,
그 기억을 시간적으로 전(前)과 후(後)로, 공간적으로 동(東)과 서(西)로, 원인과 이유
그리고 지금 까지의 결과등을 기억, 상상, 추리로 떠 올려 놓고 목적에 비추어 놓는
것이 찰(察)이고, 그 찰(察)해 놓은 것을 아는 일이 관찰이다.
관(觀)만으로는 그리움이나 미움에 빠지지 않기 어렵지만,
관찰(觀察)하면 그런 번뇌들을 해결, 해소하기가 너무나 쉽게 된다.
"미운 놈을 어찌 미워하지 않겠냐고 !?" : 관(觀) 만의 견지.
"인생에 백해무익한 미움을 가질 순 없지" : 관찰(觀察)의 견지.
여기(이 글) 에서의
관(觀)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하고 있다.(안 할 수가 없다)
관찰(觀察)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몰라서) 못 하거나 안 하고 있다.
이런 줄 아는 이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