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自)]가 '나(我=汝)'를 어찌할 수는 있고, 없다.
"내가 나를 어찌 할 수가 없어서 괴롭다",
"나도 내 자신을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다"
이런 등등의 소리를 더러 듣는다.
지금까지 필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소리 그대로를 말(뜻)이라고
알고 있었다.
특히 한 문장 속에 "내", "나" 라는 것이 혹은 주어(내가...나도..)로, 혹은 목적어
(나를....내 자신을....)로 등장해 있지만, 그 구별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야 "내", "나"로 다르지만, 주어도 내 자신, 목적어도 내 자신
이라 동일시 되는 일이 거의 보편적이다.
"그 인간(識)을 잊고 싶다(意慾)"는 마음이 하나 떠 올라 있다.
그 것에 "나의 마음", 또는 "내 마음"이라 하는 이름이 붙어 있다.
a. "나"와 "내'가 같은(하나에 붙여 진) 이름이라면 이름을 하나로 단일화 하고,
b. 각각 다른 것에 붙여 진 이름이라면 둘의 정체를 제대로 구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나"와 "내"가 같은 하나인지, 다른 둘인지를 문제조차 삼는 사람이 없다,
만약에 "나"와 "내"가 다른 둘 이라면 그 중의 하나인 주체만을 주어로 알아야 한다.
내 스스로(自)만을 주체로 표현하고,
주체가 아닌 객체(목적어인 대상)인 나(他, 汝, 客)는 결코 주체로 알지 말아야 한다.
"내(주체)가 나(대상)를" 이라고 해야지 "나(주체)도 내 자신(대상)을" 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을 왜 이토록 강조하느냐 하면, 소위 "마음 다스리기"가 단순하고 쉬울 수가
있는데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어렵고 불가능 한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내(주체) 스스로(自), 마음(我意識)을 대상(너, 他)으로 삼으면 다스리기가 너무나
단순하고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구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마음을 다스릴 주체인 내 자신이 무엇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다스릴 대상인 마음을 내 자신이라 착각하는 동일시에 빠지게
되니, 주체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를 바 없거나, 대상이 주체처럼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 다스리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깨닫고(自覺),
다스려야 할 마음(我意識)을 객체(他, 너)로 삼고서
다스리는 일을 하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싶은, 하려는 마음을 내(주체) 스스로(自)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의 깨달음(自覺)이 없이,
"(안 되는, 할 수 없는 일 여하를 불문하고) 원하는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혼동 내지는 내 자신이라 착각에 빠져있으면,
무엇이 사실상 빈 주체의 자리에서 그 마음을 달리 어찌 할 수가 있겠는가, 없다.
내(自)가 자각하고 있으면 다스리지 못할 마음인 나(他, 汝, 客)는 있을 수 없고,
내가 자각하지 못 하고 착각에 빠지면 나를 어찌할 수 없는 일이 허다하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제대로 알면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 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자각없이 착각에 빠지기가 보편적, 일상적인 사람들로선
이해는 커녕 듣기도, 읽기도 싫은 이야기(글) 이기도 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