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의) 것과 그 초월 경지.
지금 내가 아는 것은, 글자 그대로 " 지금 내가 아는 것"에 국한된다.
이전에 알았던 것도, 이후에 알게 될 것도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아는 것" 이라는 말(글)의 뜻이 무엇인지는,
1) 형식적으로 단순하게만 보면 일곱 글자 형식일 뿐 이다.
2) 실질적으로 복잡하게 보자면 그야 말로 온갖 뜻(두뇌 속 의식)으로
만들어서 볼(알) 수가 있다.
이하에서는 필자의 두뇌 속에 형성해 놓은 필자 나름의 뜻(意識)이다.
지금(至今) : "내가 무언가를 아는 그 순간" 이라는 뜻 이다.
영원 무한인 절대시(絶對時)에서 "아는" 동안이다.
내(自) : 사람의 두뇌 속에서 아는 일을 하는 주체인 정신이 자칭하는 이름이다.
알려지는 무엇을 알건, 그 것을 아는 주체이지 알려지는 객체가 아니다.
고로 "내가(주체로서), 내 자신(객체)을 안다"는 일은 성립불능이다.
아는(知, 觀) : 내(주체) 앞에 등장해 있는 대상(객체)에 대(對)하고 있음을 본다(觀)
하고, 그 것을 언어화 하여서 앎을 안다(知)고 한다.
예컨대, 사진을 본다(觀), 언제 누구의 어떤 상황이라고 안다(知)
('나'의 ) : 내가 아는 어떤 대상중 자기자신에 관한 의식의 이름이 통칭 ;나'이다.
나의 모습, 나의 기억, 나의 상상, 나의 주장, 나의 의사, 나의 기호 등등으로
대체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모르기 일쑤다.
예컨대, 남의 비난을 듣고 성난 모습은 떠오르지 않거나 외면된다.
것(識) : 내가 아는 어떤 정보(識)로서 기억이나 상상이라 칭하기도 한다.
것(意) : 두뇌 속에서 이 "것(識)"들 중의 어떤 "것(a識)"이 딴 "것(b識)"과 상대화 되어서
비교(사실)적, 평가(가치)적, 판단(규범)적, 선택(利害등)적, 결정적인 언어로
형성된 것이 의미어, 의미, 마음이라는 의(意)이다.
것(意識) : 위의 정보(識)에 그에 연결되어 있는 마음(意)을 합친 의식(意識)이다.
순수한 정보(識)에 마음(意)이 연결된 것이 의식(意識)이고, 의식(意識)에서 마음
(意)을 떼어 내면 순수한 정보(기억, 상상 그대로)만 남게 된다.
그 누구라도 [지금 (그 사람의) 내가 아는 (나의 마음) 것] 이상도, 이외도 알지 못 한다.
그런데 그 아는 중점이 어느 지점(?)인지에는 다음 네 가지 차원으로 구별할 수 있겠다.
1. 것(識),
2. (나의 마음인) 의(意),
3. 아는(일),
4.내(自)....이상 4차원과,
5.. 그 나머지 전체인 경지(위의 4개 차원을 포용하고 초월해 있는)
위의 순서는 그 비중에 견주어서 보면 역순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위의 순서 그대로가 정상적인 것 처럼 되어 있음이 보편적이다.
예컨대, [다이아 몬드]가 1위인 "것" 같지만,
그걸 보석, 보물이라고 평가하는 마음(意)이 없어도 과연 보석일까?
두뇌 속에서 돌을 보석으로, 보석을 돌인 것 처럼 만드는 마음(意)이지만, 그걸 아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리 알 길이 없다.
아는 일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걸 하는 주체인 내(自)가 없으면?
내가 있어서 대우주에 어느 정도나 영향이 있다고?
내가 아는 일이 없으면 대우주는 물론이고, 그 추호라도 있다는 걸 어찌 증명하지?
내가 "대우주를 안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양적, 질적으로 어느 정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