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고민[하는] 목적, 고민 "하는(빠진)" 이유.

나 아닌 내 2023. 11. 19. 16:17

먼저 "고민(苦憫)"의 뜻을 다음 두 가지로 번역해 보고자 한다.

1). "괴로운(苦) 근심(憫)".

2). "근심(憫)으로 인한 괴로움(苦)".

 

위 1)의 경우는 괴로움과 근심이 하나인 것 처럼 여져지는 반면에,

2)의 경우는 근심이 원인, 괴로움이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하나로 여겨지면 괴로움과 근심을 분리하여 다룰 수가 없게 되지만,

2) 둘이 연결된 것으로 알면 그 연결을 끊어서 원인만을 따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즉,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하여(목적) 근심을 해결 또는 해소하여(수단, 방법)

괴로움을 해소할 수(결과)가 있고 쉬워 진다.

 

그런데 사람들(그 두뇌 속 정신기관인 내 자신)이 고민을 대(對)하는 자세에

다음 두 가지 전혀 상반되는 유형이 있다.

 가). 스스로 주도하여(自主) 괴로움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근심을 다루는

       유형.(위 2)의 뜻 으로 고민을 안다)

 나)   고민이라는 결과(괴로움)에 빠져서, 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만 

      발악하듯 한다.(위 1)의 뜻 으로 고민을 안다)

 

고민을 보는 핵심이 가)는, 그 원인이고 뿌리인 마음(根心)에다 집중하는 반면에,

나)는, 그 결과이고 말단적 현상인 괴로움(苦)에 집중되는 점이 상반된다.

 

원인인 근심을 해소 또는 제겨하여 결과인 괴로움을 없게 하려는 목적으로 함을

[스스로 고민 하기] 한다면,

 

"괴로운 근심" 이라는 하나의 대상이 있는 것 처럼 알고, 그런 상황에 제 자신이

있는 것 처럼 착각과 혼동에 빠져서 무조건 그것으로 부터의 도피나 탈피를 추구

하는 것을 "고민에 빠짐"이라 할 수 있겠다.

 

위의 둘은 어쩌면 상대적 관계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 고민하기]를 한다면 "고민에 빠짐"이 있을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고 저절로 [스스로 고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두뇌를 향하여 근심을 해소하려는 질문, 설명, 명령하는 작업을 해야

[스스로 고민함]이기 때문이다.

 

자, 지금까지 내 자신은 온갖 걱정, 불평, 불안,불만 등등 근심꺼리에 정면으로

대(對)하여 [스스로 해소하기]를 해 온 적이 과연 제대로 있기나 하였는지....

그걸 해소하지 않거나 못 하여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린 일은 적었던가...

 

고민의 이유를 옹호하는 것이 고민에 빠짐이고,

고민에서 원인인 마음(근심)을 분리하여 목적적으로 다룸이 [스스로 고민함]이다.

 

종합하자면,

"근심도, 걱정도, 심지어는 괴로워 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살면서 어찌 근심, 걱정, 괴로움 없이 살겠느냐" 하면서 고민에 빠지는게

보통 사람들이다.

 

고민에 빠지지도 말고, 고민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려고도 말고,

단지 고민의 원인인 근심(不자가 붙은 心들 =불안, 불평, 불만, 불행등)을 해소하는

[스스로 고민하기]를 성실히 하시라. 

 

혹시나.... 오해는 금물이다.

없는 고민을 일부러 만들어서 하라는 뜻이 아니라,

제대로 몸라서 빠져있는 고민에서 즉각 깨달아서 해소 작업에 나서라는 뜻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