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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관찰과 상대적 관찰.

나 아닌 내 2024. 1. 24. 10:09

여기서 "절대적 관찰"이라고 함은,

두뇌 속의 어떤 대상 정보(識)를 오로지 "그 자체 그대로"만으로 본다는 

뜻 이다.

 

또, "상대적 관찰" 이라고 함은,

두뇌 속의 어떤 대상 정보(識)를 "딴 정보(識)와 상대적으로" 본다는

뜻 이다.

 

예컨대, [자기 월급 300만원]을 오직 그 것 그대로만 보는 것이 전자이고,

딴 사람의 봉급액 또는 제 두뇌 속 욕망(기대수준)과 상대적(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적)으로 보는 것이 후자이다.

 

절대적 관찰만 하면, 그 어떤 -비교적인, 평가(好惡)적인, 판단(可否)적인,

선택(取捨)적인, 결정(이러자, 저러자)적인- 마음(意)이 생기지 않고,

순수한 정보(識)로만 알게 된다. 

 

반면에, 상대적 관찰에만 빠지는 줄도 모르고 빠지게 되면 그 상대화 작업의

결과물(?)인 상대적 언어(意), 즉 마음(心)이 발생하여 의식화, 의사화, 의향화,

의욕화,의현(意見)화, 의지화, 의기화가 그 일부 또는 전부로 흐르게 된다.

소위 희노애락애오(喜怒哀樂愛惡)라는 의기(意氣), 또는 심기(心氣)라는 것이

발생하게 된다.

 

현명한 정신은 자기의 건전한 삶에 필요 유익한 운전을 위하여 관찰방법을

효율적으로 선택함에 완전한 자유와 전적인 책임을 다 한다.

 

우매한 정신은,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학습적 의식작용의 대부분이

상대적임을 알지 못 하고, 그 것이 마치 두뇌 외부의 실제가 그러한 줄 혼동에

빠져서 스스로의 자유와 책임을 전혀 모르니....... 

 

예컨대, 백화점 보석 코너를 지나 가면서 절대적 관찰만 하는 정신의 소유자인

사람은 그 어떤 마음도 생기지 않거나 생겨도 금방 무시해서 버린다.

반면에, 상대화된 의식에 빠진 우매한 정신의 소유자는 사용 내지는 소유하고픈

욕망이 크게, 강하게, 무겁게 작용하고 있어서 오래 동안 평안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 글은 상대적 관찰의 폐해를 강조할 뿐, 그 것이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필요,

유익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절대적 관찰의 필요, 유익만 강조할 뿐, 그 것이 때와 상황에 따라선

미흡한 경우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운전함에 있어서 어떤 식의 관찰이 필요하고 유익할지

또는 불필요하고 유해할지를 올바르게 확인하여 선택할 일임을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