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火=怒氣) 나지 않고, 웃음(笑=喜氣) 나오게 살기.
사람들이 더러 주고 받는 소리에,
"성 내지 말라", "웃고 살아라" 하는 것이 있다.
그리 될 수만 있다면 누군들 그리 하지 않을까..........
그런 소리를 들은 사람이 하는 말,
"그게 말 처럼 그리 쉬운가!?"
"저 자신도 그리 못 하면서...."
여기서 분명히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내] 스스로 할 수 있고, 실제로 하는 일이 있고,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일도 있다.
[내] 스스로 할(行) 수 없어서 못 하는 일이, [내] 아닌 무언가에 의해서 이 사람에게
일어나게 되는(化) 일이 있다.
1. [내] 스스로 성 내고 안 내고, 웃음 내고 안 내고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가?
2. [내] 스스로는 정상적으로 하지 못 하는데 무언가에 의해서 성이 나고 웃음이
나는 일이 있을 뿐 인가?
위 1에 대하여는 "[내] 스스로 성 내고 웃음 내고 할 수 없다"고,
2에 대하여는 "두뇌 속 의식계에서의 작용으로 성도 나고 웃음도 난다"고 답하련다.
스스로 "내는" 일과 의식계에서(저절로) "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고.
이 구별의 실익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내는] 일은 하자(하라), 말자(말라) 할 일로 여겨서 마땅하지만,
스스로 [내는] 일이 아닌 일을 하라, 말라 하는 것은 혼란만 일으키는 쓰레기일 뿐 이다.
낼 수 없는 성, 웃음을 진정으로 내기가 가능한가?
허위 가장이나 연기로는 가능하지만....
그러니 "성 내지 말라, 웃고 살라"는 말은, 참으로 무지막지한 소리일 뿐 이다.
"성 내라, 웃지 말라"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의식계에서의 작용으로 나오는 성 이나 웃음은 [내]로선 속수무책인가?
제대로 모르면 거의 속수무책이고, 제대로 알면 자유자재로 통제가 가능하다.
성 나게, 웃음 나게 할 수도 있고, 안 나게 할 수도 완전히 자유롭다.
제대로 알면 그 의식작용을 통제하여 성이 안 나게, 웃음이 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사실상 [내]가 성 내고, 웃음짓고 할 수가 있게 된다.
누군가를 싫다, 원망, 증오하여 성이 날 때, 그런 마음들이 "백해무익이구나"하는
말을 연결하면 그 성(노기)이 원천적으로 해소된다.
성 나는 상태에서도, [내] 스스로 초월적 관찰자임을 자각하고, 그 상대가 "철없는
아이같다"는 말을 연결하면 미소가 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성 이나 웃음이라는 결과(果)는 의식계의 의욕이 원인(因)이고, 그에 상대적인
정보(識)가 조건(緣)이다.
예컨대, [a 친구라는 사람에게 긴급자금 1억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면 응해 주리라
기대하고, b 부탁하였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는 사실 그자체가 성이나 웃음을
일으키지도 않고, 그 사실 때문에 성 이나 웃음이 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위의 사실을 a 부분을 원인, b 부분을 조건으로 하여 평(評)하는 일이 두뇌
속에서 이루어지면 그 결과에 따라서 성이나 웃음이 나오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친구지간에 그리 야박하게?" 하면 원망과 미움이 형성되어 성(노기)이 나고,
"그럴만한 사이도 아니면서 친구라고 기대했다니..."하면 쓴 웃음이 나고,
"어줍쨚은 친구팔이 행태를 혼내 주길 잘 했다" 하면 만족스런 웃음이 나기도 한다.
결론을 내리자.
성 나지 않고, 웃음 나게 하려면 의식적 기대수준(意慾)을 낮추거나, 그 상대적인
조건을 수준 이상으로 성취하여 만족스런 기쁨(喜) 에너지(氣)가 생성되게 하면 된다.
그런 일을 하지 않고는 성 내지 않기도, 웃음 내기도 자연스럽게는 못 하고,
성 나지 않게도, 웃음 나게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문제는, 그 정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예 : 고민 해소)을 몰라서 하지 못 하고,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예 : 고민을 안 하기)을 할 수 있고 당연한 일인 것 처럼 알고
헤맨다는 데 있다.
울고 싶으면 울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의식을,
웃고 싶으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의식을 만들기, 그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성이 날 수 밖에 없는 의식을 그냥 둔채로 성을 안 나게, 안 내려고 애쓰니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