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디에 있는 무엇"일까?
위의 질문은 "어디(所在)" 와 "무엇(정체)"이 핵심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디"도 "무엇"도 주의해서 알지 않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대상화 될 수 없는 [내] 스스로를,
착각으로 대상화 해 놓고, 너무나 잘 안다는 믿음에 빠져 있다.
"내가 내 자신을 잘 알지 누가 잘 알겠는가"
"내가 어찌 내 자신을 모를 수 있으며, 남이 어찌 내 자신을 제대로 알겠는가"
이런 대답이 보편적 상식 아니고 뭔가....
자, 그렇다면 유사 이래로 소위 "나를 찾아서" 온갖 고행과 수행을 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의 미숙인 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었을까?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고 있다는 나(내)를 찾아서 그토록 애써 헤매 다녔으니...
과연 "나 자신을 잘 안다"는 보편적 상식이 올바른 것 인지,
"나 자신을 알 수 없어서 찾는다"는 그들이 올바른 것 인지....
그 결정적인 정답은 단순한 논리 하나만이 필요 충분하다.
"내 스스로(自), 내 스스로(自)를 대상(객체)화 할 수가 없으므로 알 길이 없다"는.
"내 스스로(自)는, 스스로(自)가 아닌 대상(他), 객체만을 알 수가 있다"는.
고로 내 스스로(自), 내 스스로(自)를 안다고 하는 일은, 내 스스로(自) 아닌 것(그
중의 하나가 두뇌 속 내 스스로(自) 앞에 등장해 있는 '나'라는 이름의 의식이다)을
내 스스로(自)라고 착각에 빠져 있을 때만 성립된다"는......
따라서 "내 스스로(自)는 그 순간에 아는 것 일체를 내)自) 스스로가 아니라고
부인하여 완전히 공제한 다음에 남는 유일한 것이, 아는 주체인 내 스스로(自)라고
깨닫는 방법 뿐 이다"는....
알려지는 대상의 이름이 "내"이건, "내 자신"이건, "나"이건, "나 자신"이건, "자기 자신"
이건, "심ㅇㅇ" 이건, 그건 모두가 그 것들을 아는 내 스스로(自)일 수가 없다.
이걸 이해하면 착각이 발생하지 않고,
이걸 바탕으로, 내 스스로(自)는 아는 것(彼岸에 있는 他, 객체) 건너편(此岸)에 있어서
서로 오지도, 가지도 못 하는구나...하고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나이 80 중반의 할머니와 50세가 넘은 그 딸이 손녀(질녀)의 아들 백일행사에 갔다 와서
할머니로서, 고모로서 너무나 홀대 받았다고 원망, 미움에 빠져 있길래,
"그렇게 그 아이(손녀, 질녀)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그애 아버지(아들, 오빠)와도 불화하여
무엇을 초래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숙고해 보시라"고 권유했더니 소위 "손톱도 먹히지
않더라" 왜 그럴까?
단적으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나"를 대상, 객체로 삼아서 자기와 주변 사람들 인생에 무해,
유익하게 다루어야 할 전적인 자유와 책임이 있는 그 사람의 [내] 스스로(自)가,
"고약한 손녀(질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나"라는 의식을 다루기는 커녕 그 것을 내 스스로(自)
라고 아는 착각에 빠져있는 줄도 모르니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그런 마음(의식)"을 바로잡으라고 충고나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내] 스스로를 비난한다고
오인, 오해, 오판, 오선택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흡연 습성, 도박 습성, 과음 주벽을 고치라는 조언이나 충고가 비난으로 여겨지는 것도 마찬가지.
내(주체, 스스로)가 아는 나(我意識)를 객체, 他者라고 알기가 쉬운(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게 알려지는 그 '나'가 스스로(自) 주체인 것 처럼 알기가 쉬운(스스로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고도 많다는 것을 아는 이 극히 적다.
내 스스로(自)가 아는 것 일체가 오직 두뇌 속 의식일 뿐 이니,
그 의식을 아는 내 스스로(自)는 그 의식과 일정한 거리를 둔 건녀편에 있을 수 밖에.
그 의식을 알고 다루는 일을 포함하여 두뇌를 부리는 일을 하는 운전자가 내 스스로(自)의 정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