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間)]를 확보하기.
소위 "틈새 확보를 위한 경쟁이나 다툼이 치열하다"는 소리를 간혹 듣는다.
무엇과 무엇이 딱 붙은 듯 있으면 틈새(사이)가 있을 수 없지만,
그 둘의 사이(間)가 비어 있으면, 그 사이에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가 있다.
사이를 크게 구별하자면 시(時)와 시(時)의 "시간적 사이(時間)", 공(空)과 공(空)의
"공간적 사이(空間)"의 두 가지가 있다.
싯점과 싯점의 사이가 시간, 공점(지점등)과 공점의 사이가 공간이다.
싯점이 없는 [절대 시(時)]와, 허점이 없는 [절대 허(太虛)] 차원에선 사이라
는 것이 성립될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사이(間)는 사람의 두뇌 속에서 형성된 상대화의 산물일 뿐 이다.
예컨대, 하루를 잠만 자거나 연속물만 보고 있는 사람의 차원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둘 이상의 싯점이나, 공점이 없으니 그 사이란 것이 어찌 성립되겠는가?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면 모든 시간, 공간은 [내] 스스로 다루기 나름이다.
1. 무시간, 무공간.
그 어떤 싯점과 싯점, 공점과 공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사이(시간, 공간)라는 의식이 성립될 수가 없다.
2. 시간과 공간 만들기.
두뇌 속의 현장이나 상상 정보(識)들에 어떤 싯점이나 공점을 하나씩
만들면 그 싯적인 정보(識)와 정보(識)가 시간으로, 그 공적인 정보와
정보가 공간으로 연결된 것 처럼 의식화 된다.
3. 시간과 공간 고치기.
위의 시간과 공간에서의 사이(間)를 늘이거나 줄일 수가 있다.
두뇌 속의 그 싯점이나 공점의 한 쪽이나 양쪽 모두를 올기면 된다.
4. 시간과 공간 버리기.
잠시 버리기는 두뇌 속 스크린(?)에 공간도 없는 소위 "딴 생각"을
떠 올리기만 하면 된다.
완전히 버리기는 모든 것을 전체로(일생을 대우주 단위로만) 보면 되겠지만,
실천할 사람은 전무하리라.
시간과 공간의 정체가 위와 같다고 아는 사람은 극히 희소하다.
시간도, 공간도 두뇌 바깥에 실제(사실)로 존재한다고 알고 있다.
산 위에 올라 그저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처다 보라.
그리고 저 아래에 펼쳐져 있는 들판을 전체(구별없이)로 보라.
그 어디에 시간이니, 공간이니 하는 것이 있는가.....
내가 몇 시에 여기에 왔지? 지금은 몇 시지?
시계를 보고 계산하니 1시간이 지났구나...
시계 속에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가?
들판의 오른 쪽에 공장이 있고, 왼 쪽에 공원이 있구나...
그 사이(공간)가 얼마(몇 km)나 될까?
공간이 들판에? 이 몸의 눈 속에? 있었기 때문인가?
눈을 감고 누워서 60년전의 어떤 기억을 떠 올려 본다.
누구에게 욕설을 듣고 매를 맞던 기억이다.
수치와 분노에 치가 떨린다.
지금 [내]와 두뇌 속 그 "기억"이 연결되어 있어서다.
그 사이(間)가 없어서다.
그 사이를 [내]가 두뇌 속에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식과 [내] "사이(間)"는 [내]가 두뇌 속에 만들면 있고,
만들지 않으면 없다.
모든 "사이"란 것이 그러 하듯이.
의식과 [내] "사이"가 의식되지 않아서 없을 때 소위 "의식에 빠짐"이
발생한다.
그리움에 빠짐, 미움에 사로잡힘, 욕망의 덫에 걸림, 열등의식에 갇힘
등등이 모두 "사이"가 없어서다.
시간적 "사이"가 없으니 소위 생각할 겨를이 없다.(없는 것 처럼 된다)
공간적 "사이"가 없으니 조용히 침착하게 대처할 여지가 없다.(없는 것 처럼)
[내] 스스로 두뇌 속에 "사이"를 만들지 않으니, 딴 것에 있을 수 없는 "사이'가
어찌 있어 지겠는가.....
"사이(間)"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과 모르거나 엉터리로 아는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다를지는 누구나 짐작하기 어려울게 없지만....
"사이"라는 것이 두뇌 속에만 있을 수 있는 환상같지만, 그걸 잘 다루기 여하에
따라서 이기(利機)도 흉기도, 보물도 애물도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