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은 드물지 않게 있을 수 있다.
그 두뇌 속에 "이런 행동(識)은 옳지 않는 행동(意)"이라는 의식을 품고 있으면서
실행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 두뇌 속에 "저런(그런) 행동(識)은 옳지 않은 행동(意)"이라는 의식을 품고
있으면서 자기나 타인의 행동을 -가부(可否) 판단을 통하여- 보고 아는 사람은
결코 드물지 않게 있을 수 있다.
타인의 행동현장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있고(타인에 대한 심판?),
자기의 행동기억이나 가상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있다(자기에 대한 반성).
그 어느 경우나 행동 당시가 아닌 행동 이전이나 이후에만 심판(반성)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람이 -본능적 반응을 제외하고- 하는(당시) 모든 행동은 "옳지 않는 행동"
이라 하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사람이 한(과거) 모든 행동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반성) 하거나, 타인이 그의 의식으로 판단하여 할 수가 있으므로.
여기서 인간간에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과 해소책을 찾아 낼 수가 있으리라.
"어떤 행동(識)에 어떤 마음(意)"을 연결하여 하나의 의식(意識)이 형성되고,
그 것이 자료가 되어 어떤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는 각자의 두뇌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똑 같은(하나의) 행동(識)"을 현장으로 보면서 갑은 "옳지 않는(은) 행동(意)"
이라는 의식이 그 두뇌 속에 형성되고,
을은 "당연한(옳은) 행동"이라는 의식이 그 두뇌 속에 형성되고,
병은 "특별히 옳으니 옳지 않으니 할게 없구먼" 하는 의식이 그 두뇌 속에
형성될 수도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소위 "보편적 진리" 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 진리"를 모르는 줄도 모르고,
자기의 두뇌 속 의식만 알뿐, 타인의 두뇌속 의식은 모르는 줄도 모르고,
자기의 판단 기준(자기 두뇌 속 의식)으로 타인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이
편협한 식견에 사로잡힌 교만임도 모르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다.
위와 같은 갈등의 원인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면,
타인의 두뇌 속 의식을 스스로 추리해 보거나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
묻는 등의 방법으로 차려서 알려고 하게 되고,
자기와 타인의 두뇌속 의식이 각각 다름이 확인되면 그걸 공유하여
서로에게 해로움은 적고 이로움은 많게 공통적인 의식을 만들 수가
있게 되니 곧 갈등의 해소이다.
남이 "네가 글렀다, 틀렸다, 잘못했다,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
"왜 그렇게 말 하는데?" 하고 조용히 참착하게 묻는 사람이 드물다.
오히려 앵무새처럼 "아니, 네가 글렀다, 틀렸다, 잘못했다, 책임져야 해"하고
더욱 강하게 반격하는 사람이 흔하다.
또, "왜 그렇게 말 하는데?" 하는 질문을 받고도, 그 근거인 자기 두뇌 속
의식을 정확히 알아차려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네가 글렀으니, 틀렸으니, 잘못했으니, 책임져야 하니 그리 말 하지" 하거나,
"꼭 내가 말해 주어야 하나, 그런 짓을 하고도..." 하거나,
"길 가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 물어 봐도 다 안다" 하거나,
"더 말 하기 싫다, 꼴도 보기 싫다, 꺼져라" 하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여담(?)이 하나 있다.
"나도, 내가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다만 (................때문에)" 이라는 구실이나
변명으로 합리화 한다고 그게 옳지 않는 행동이 아니라는 의식이 되지는
않는다.
모든 합리화는, 합리화 시도로 끝나지, 성취되기는 극히 어렵기 때뭔이다.
모든 잘, 잘못은 사람의 두뇌 밖에는 추호도 없다.
사람의 두뇌 속에만 온갖 잘, 잘못이 제 멋대로 형성되어 있다.
그 것이 두뇌 바깥에 말로 표현되기도 하고, 두뇌 바깥의 일에 투사, 투영되기도
할 뿐 이다.
말로 외부에 표현된다고, 외부의 일에 투사, 투영된다고 두뇌 속 마음(當意, 不當意)
이 외부에 실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그런(잘, 잘못이 외부에 있는 것 처럼인) 줄 아는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 이다.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향하여 잘, 잘못 논쟁이 발생하면 그 결과는 어떻던가?
각자의 삶과 서로의 관계, 주변에의 파급효과들을 두루 살펴서 해로움은 두루
적고, 이로움은 두루 많은 기준을 합의부터 하고서 잘, 잘못을 따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가장 좁혀서 자기의 삶에라도 무해유익한 잘, 잘못 판단을 하려고나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