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두 요소(형식과 실질).
"마음"이, 사람의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1), 모른다고 아는 사람은 극히 희소하고.
2). 안다고 아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다.
위의 2)중에
가) "마음이 마음이지"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나) "마음(名)이란, 이러 저러한 것(識)으로서, 사람에 이러 저러한
가치(意)가 있다"는 식으로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위의 나)에 해당되는 사람도 그 구체적인 의식은 저마다 다양하다.
소위 개념적 통일이 이루어 져 있지 않으므로.
필자의 "마음(名)이란, 사람의 두뇌 속 정보(識)와 정보(識)끼리를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화 작업을 거쳐서 형성된-
상대적인 언어(識)로서, 그 사람의 삶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많은 영향이 발생한다(意)"는 의식도 그 중의 하나일 뿐 이다.
요약하자면, 다음 두 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진정한 마음이다.
첫째, 형식적 요소로는 상대적인 언어(문자)로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실질적 요소는 상대화 작업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크다"거나 "큰 일" 이라는 형식의 근거인 "무엇에 비하여"라는
실질이 있어야 한다.
"좋다(또는 나쁘다)"거나 "좋은(또는 나쁜) 말" 이라는 형식의 근거인
누구(所)의 무엇(要)에 도움(또는 해로움)이 된다는 실질이 있어야 한다.
"밉다"거나 "미운"이라는 말(형식)만 있고, 그 소요(所要-소위 미워할
필요, 미워해서 무엇을 얻으려는지)가 없거나 불명이면 실질이 없으므로
제대로인 마음이 아니다.
"옳다(또는 그르다)" 거나 "옳은(또는 그른) 주장"이라는 말(형식)만 있고,
그런 주장의 소요, 필요, 이해득실이라는 실질적 근거가 없다면 그야 말로
백해무익하다 아니하기 어렵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목청이 터지게 언쟁을 하고, 나아 가 폭력적 투쟁, 파괴적 행패에
이르는 일의 거의 모두가 형식인 마음만 있고, 실질인 근거가 없거나,
허무맹랑한 구실이나 교언영색인 경우가 그 대부분이다.
소위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걱정된다"는 마음(형식)의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그 "걱정"이 누구의 어디, 무엇에, 어떻게 쓰이던가?
도움으로? 해로움으로?
형식으로는 완전한(?) "그리운 사람" 이라는 "미운 인간"이라는 마음이지만,
그 이유나 목적이라는 실질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미워해서 뭣 하려고?" 하는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 하는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