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들기.
먼저 통상적으로 사람(人)이라 칭하는 존재를
여기서는 자기(己), 자신(神), 나(我)로 구별하여 칭하고자 한다.
1), 자기(己)라는 사람(本人)
타인이 아닌 사람으로 그의 전체, 그 자체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자기에 속해 있는 것 들에는 [자기]의 정신(自神), [자기]의 나(自我)'라고
칭하고.
그 사람의 주인격이고, 불가에서 말 하는 법신(法身)에 해당된다.
2), [내] = [자기]의 신(自神)
자기의 두뇌 속에서 두뇌를 상대로 하여 감각작용, 운동작용, 사고작용에
관여하는 통칭 "정신기관", 자칭하여 [내] 이다.(비유하자면 청지기 같은...)
위로는 [자기]를 성실히 섬기고, 아래로는 '나'를 잘 다루어야 하는 기관이다.
그 사람(주인)의 하인격이고, 불가에서 말 하는 응신(應身)에 해당된다.
3), '나' = [자기]의 의식중 [자기]에 관한 것.(自我)
자기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자기(己)에 관한 의식(我意識이라 한다)을
'나'라고 칭한다.
'나'의 이름, 신장, 체중, 취미, 기호(기호), 경력, 소질, 특기, 장점, 약점,
욕망, 가치관 등등등.........(비유하자면 "똥개", [로봇] 이라고나 할까...)
그 사람의 자료(수단, 도구)격 이고, 불가에서 말 하는 화신(化身)
에 해당된다.
그대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응)하는 자가 [내](응신)이고, 그 대답의 내용이 '나'(화신)이고,
이 둘을 포함한 전체가 그 [사람] 자체(법신)이다.
[자기]의 본능과 정신활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활동이 사실상 '나'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
[내]가 '나'를 상대함에 맹신과 맹종(착각상태), 묵인, 수동적, 능동적,
주도적 등등의 유형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그 정신이 '나'를 자기(사람) 자신(정신인 내)이라고 아는
착각과 혼동에 빠져서 맹신, 맹종하면서 산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를 상대로 또 다른 '나'로 대항하는 갈등속에 산다.
정신적 자각을 이룬 사람만이 자기(법신)를 섬기고, '나'(화신)를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나'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때 까지의 인생이 정해
져 왔고, '나'를 어떻게 만들고 고치고 바꾸느냐 여하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이후 인생이 정해 져 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나'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피동적, 수동적, 소극적, 맹목적,몰주체적 인 과정이 먼저이고,
자주적, 능동적, 적극적, 목적적, 합리적인 과정이 그 다음에 가능하다.
어릴 때는 환경적 경험과 학습에 의하여 '나'가 형성되고,
소위 정신적 "성년기" 이후에 스스로 주도하여 '나'를 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를 할 수가 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나 하는지는
각자의 정신이 스스로 깨달아서(自覺) 하기 나름이다.
소위 "맹모삼천지교"는 정신적으로 어릴 때에 필요 유익하고,
정신적 깨달음, 지혜의 계발, 본분 숙지, 두뇌 활용법의 실천등이
성년기 이후에 필요, 유익하다.
어릴 때의 환경적 요인이 성년에 이르러서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성년에 이르러서는 영향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다 그 정신적 수준의 계발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수준이 생존 연령과 어느 정도는 상관이 있지만 필연적이지는
않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자질(지식이 아닌 지혜)이 특출한 사람이 있고,
늙어서 죽을 때 까지 편협하고 고집스러운 철부지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나'가 좋아하고, 하고싶다 하는 일이 자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가 못 한다, 하기 싫다 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이걸 검토하고 판단하여 승인 또는 반성, 시정하려면 [내] 로서의 자각
부터 확고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이라도 [내] 스스로, 자기 두뇌 속의 '나'를 살펴보기 부터
해 보시기를...
자기에게 필요 유익한지, 불필요하고 유해한지를....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내]가 자각을 못 하고 그런 '나'들을 [내]
라고 착각, 혼동에 빠지면 그런 일을 무엇이 할 수 있겠는가?
붓다와 예수가 다시 와서 [내]게 가르치려 한들 [내]가 들은 척도 안,
못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