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느냐 묻지도, 답하지도 마시라.
가수 현미가 부른 [왜 사느냐고 묻거던] 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런 물음에 어떻게 답하겠다는 내용이 노랫말에 들어 있다.
그와 유사한 문답은 사람들 끼리에서는 물론이고, 혼자서 독백처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그런 물음을 하려면 실제로 살아 있는 그 본체에다 하여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그 전체인 것 같지만, 그 사람의 살아 있는
본체는 그 어떤 타인은 물론이고, 그 본인의 무엇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그 사람을 생명체로 만들어서 관리하는 본성의 원천이 그 본체이다.
그 본체가 만든 정신, 두뇌, 육신등이 본체일 수 없다.
그 근거는 정신이 없어도(깊은 수면, 기절), 두뇌가 고장 나 있어도, 육신의
일부가 없어져도 생명체로 살아있게 하는 그 무엇(본체라 하자)이 있으면
살아 있으니까.
왜 사느냐고 물으려면 그 본체에게 물어야 하는데, 그 본체를 알 수가 없다고
그 본체가 만든 졸개(?)가 묻고 답하는 것이 정당화 될까?
바로 [내]가 그 본체의 졸개중 하나일 뿐, 더도 덜도 아니다.
주인격이고, 임금님격인 본체로 부터 [본체(주인, 임금)가 살게 하라(生命)],
[본체(임금, 주인)의 삶을 잘 운전하라(運命)]는 명령을 받아서 이행해야 할
하인이고, 신하이니 성실, 충실해야 마땅하다.
진정한 [주인]의 하인에 불과한 [내]가
어찌 감히 주인을 상대로 "왜 사느냐?"고 묻다니 !?
주인의 도구에 불과한 두뇌가 "멋대로 지껄이는" 이유나 목적을 맹신, 맹종하다니!?
그저 주인으로 하여금 안전하고, 건강하고, 순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것 만이 내가 -"사는" 이 아니라- 하는 본분이고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