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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안심의 정체.

나 아닌 내 2024. 9. 20. 01:41

누구나 안심을 누리고 싶지 불안에 빠지기 싫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안심하려고 하지 않는지 못 하는지,
소극적으로 불안을 떨쳐버리려 않는지, 못 하는지.......

왜 그럴까?
"안심(安心)"과 "불안(不安心을 줄인 말)"의 뜻(그 정체)을 모르고,
그 것을 다룰 수 있고(自由), 다루어야 할(自責) [내] 스스로의 깨달음
(自覺)이 없이, 불안의식의 주인공인 '나'를 [내]라고 착각에,
불안의식 상황을 실제의 일인 것 처럼 동일시에 빠져서 쩔쩔 매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의식도 두뇌 속 하나의 의식에 더도, 덜도 아니다.
두뇌 바깥에 실제로 있지 않고, 실제로 일어 난다는 합리적 근거도
없는 일종의 가상공간에 펼쳐진 영화 같은 일 이다.

그 속에 자기라는 사람이 들어 있을 수 없고, 그 것을 보고 다룰 수 있는
[내] 자신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 스스로 자각이 없으면 마치 꿈에 빠진 정신처럼 된다.

꿈을 보면서 꿈인 줄 안다면 꿈은 단번에 깨어(부서)지고, [내]도
깨어 난다.

꿈을 꿈인줄 모르기 때문에 실제 일인 것 처럼 동일시에 빠지고,
꿈 속 [나'(我)의 상황을, [내] 현실인 것 처럼 착각에 빠지지만,
"이게 꿈이겠지 확인해 보자"고 스스로 말만 하여도 금방 깨어지고 깨어 난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이게 "불안하다"는 마음(不安意)이 붙은 의식이구나..." 하고 알기만
하면 불안에 빠지는 착각, 혼동이 발생하지 않는다.
도중에라도 이게 "불안의식이구나..." 하고 확인하면 끔방 초월이 확인된다.

불안의식에 두 가지 방향성(?)이 있으니,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될 것 같아서"라는 적극적 불안과,
되기를 바라는 일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소극적 불안의 둘 이다.

미래는 비현실이지만, 두뇌 속에서는 등장해 있다는 점에서 현실과 다를바
없다.
단지, 한편으론 "ㅇㅇ일 것 같다"는 마음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아닐 수도
있다"는 마음이 서로 얽혀서 정신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 처럼이다.

불안 때문에 정신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지(自覺하지) 못한 정신이, 두 가지 이상의 불안의식에 등장하는
'나'(我相)를 자신이라 착각에 빠져서 왔다 갔다 흔들리는 것 처럼이다.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다는 나"를 [내] 자신인 것 처럼,
"설마 괜챦겠지 하는 나"를 [내] 자신인 것 처럼 번갈아 착각에 빠지니
흔들리는 것 처럼이다.

불안을 다스리려면,
첫째, [내] 스스로가 생명도, 육신도, 마음도 아닌 순수한 정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불안이 [내] 앞에 등장해 있는 하나의 의식일 뿐, 실제 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셋째, 불안의식이 현실화 될 가변성, 그 것을 예방 내지는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가당성 여하를 합리적으로 검토, 확인해야 한다.
넷째, 불안이 형실화 된다고 가정하고 그 대책을 예비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