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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生覺)하기와 생각(思念)되기.

나 아닌 내 2025. 1. 22. 11:00

자기(본인), 자신(몸), 내(정신), 나(의식)라는 이름만큼 구별이 안 되고 혼용되는
말이 드물다.
그와 유사한 현상이 생각(스스로 깨닫기)과 생각(사념)의 혼용이기도 하고.

己(자기 기 = 사람), 身(몸 신), 我(나 아=意識), 自(스스로 자=정신)
위의 넷 중에서 스스로(自) [내]라고 자칭하는 것은 정신 뿐 이다.

이 정신이 스스로(自)를 깨닫지(覺) 못 하고, 제 스스로(自)가 자기라는 사람(己)
이라고 아는 것이 자기(自+己)라는 착각이고,
제 스스로(自)가 몸(身)이라고 아는 것이 자신(自+身)이라는 착각이고,
제 스스로(自)가 나(我意識)라고 아는 것이 자아(自+我)라는 착각이고,
위와 같은 세 가지 착각에서 스스로(自)를 깨달아서(覺) 벗어남을 해탈이라 한다.

착각이 없으면 해탈도 없다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착각이 있을 뿐 속박(부자유)
이 없으니 해탈조차 있을 수 없다.(반야심경이 그런 뜻 이다)

생각하라, 생각했다는 등등의 말은 흔하지만,
실제로 생각하는(독존하는 [내] 스스로로서의 각성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소위 "생각되는(사념) 그대로"에 빠져서 헤매는 사람이 거의 전부이다.

쉬운 비유로 말 하자면,
누구나 그 정신이 스스로(自) 영화(사념의 비유)를 보지만,
[내]가 지금 스스로(自) 영화를 보고 있구나...하고 자각상태에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각함(즉, 生覺)이 없이 그저 "영화속 현실 속에 있는 것 처럼인 사념"에 빠져
있는 정신상태인 사람이 거의 전부이다.

이 스스로 생각하고 봄과 사념에 빠져 있음을 구별하는 실익은 엄청나다.
그 본인의 삶을 위하여 주체적, 목적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그
정신이 명징한 생각상태에 있지 않고는 불가능 하다.

예컨대, 그리움이나 원망, 미움, 미련, 여한, 불안, 공포 등등의 사념에 빠진
정신상태로는 그 어떤 일도 올바르게 관찰, 평가, 판단, 선택으로 최선의 결정
을 할 수가 없다.

[생각(生覺)]은 현명한 정신만이 할 수 있고,
"생각(사념에 빠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정신이 범하는 보편적인 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