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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봄(觀者로서), 보임에 빠짐(魂迷)의 구별.
나 아닌 내
2025. 4. 15. 09:42
"내가 지금 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生覺=자각을 生) 하고서 보면,
[내](보는 주체)와 영화(보이는 객체) 사이에 내 지혜(자유)가 있게 된다.
그러면 [내] 스스로 말미암아서(自由) 그 영화 보기를 자유자재 할 수가 있다.
위와 같은 생생한 각성(生覺)없이 영화를 보게 되면,
보이는 영화가 현실인 것처럼, 영화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동일시(착각, 혼동)에
혼(魂=정신, 내)이 빠져서 헤매는 것처럼 된다.
그러면 [내] 스스로의 자유는 있지만 -쓰질 못 하니- 없는 것 처럼 속박된다.
"내가 지금 담배 피우려는 습관의 발동을 보고 있구나" 하면서 보면,
[내]와 '나'(흡연습관)의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그 간격에 내 지혜(선택할 자유)가
깃들게 된다.
그러면 흡연 습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있다.
위와 같은 생각없이 소위 "멍청하게" 있으면,
내가 담배 피우고 싶어서 피우는 줄 착각에 빠져서 흡연에 도취하게 된다.
흡연이 끝난 뒤에 "반드시 단연, 금연하겠다"고 맹세해도 그런 '나'는 흡연 습성인
'나' 앞엔 추풍낙엽일 뿐 이다.
근심, 걱정, 고민, 원망, 그리움, 미움, 미련, 후회 등등을,
[내] 스스로 생각(자각을 生하여)하여 보는 줄 알고 보면, 그 것들과
[내]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그 간격에 내 자유(선택할 지혜)를 발휘하여
자쥬자재로 다룰 수가 있게 된다.
[내가 지금] 네 글자만 남기고, 모든 것을 관찰의 대상으로만 보시라.
그러면 [내] 스스로의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