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好人), 우리 말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번역(?)된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의 정체는 뭔가?
좋은(나쁜과 상대적인 비평어, 의미, 意)과 사람(사람에 대했거나 관한 이미지, 識)의 결합으로, 사람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특정인 이미지(識)에 연결된 의미(意)를 지칭한다.
그런 의식 중에는 일반(추상)적인 호인 의식과, 개별(구체)적인 호인 의식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특정의 개인과는 상관없이 "이러 저러한 의식을 가지고, 이러저러한 언동을 하는 사람" 이라는 상상적 이미지(識)에 "좋은"이라는 의미어(意)가 연결되어 있는 의식을 말 한다.(두뇌 바깥의 실존의 사람을 지칭하는게 아니라,두뇌 속의 의식일 뿐 이다)
후자는 "이러 저러한 의식을 가졌다거나, 이러 저러한 언동을 한 누구(특정인)"라는 정보(識)에 "좋은" 이라는 의미어(意)가 연결되어 있는 의식을 말 한다.
이 또한 두뇌 바깥에 실존하는 사람을 지칭해서 말 하기도 하지만, 그 것은 두뇌 속 의식의 투사(透射)와 투영(透影)일 뿐, 실존의 사람 그대로 호인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로 제기하고자 하는 바는 "좋은" 이라는 말의 뜻 이다.
무엇(識)에다 "좋은"이라는 말(비평어, 의미어)을 붙이느냐의 문제이다.
여기서 말 하는 무엇에도 여러가지 차원과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생명에 좋아, 몸에 좋아, 마음에 좋아, 정신에 좋아, 삶에 좋아 등등의 차원별 구별이 가능하고,
과거에, 지금에, 미래에 등의 시간적 구별이 가능하고,
자기(나)에게, 너 에게, 그 에게 등등의 개인별 구별이 가능하고,
여기서, 저기서, 그 어디서 등등의 장소적 구별도 가능하다.
생명의 어느 용도에, 몸의 어느 부분에, 마음의 어느 부분에, 정신의 책임 또는 무책임에, 삶의 어떤 부문에 좋다는 것 인지, 그 종류별 구별도 가능하고,
또, 어느 정도나 좋은가 하는 양적 구별도 가능하다.
그러니 단순히 "저(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하는 표현은 실속(즉, 뜻)이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또, "내 마음에 들어서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도, 어떤 마음에 든다는 뜻이 없으니 역시 뜻이 있다고 하기엔 부적당하다.
또, "슬픔에 빠져 있는 나를 위로해 주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표현도, 위로의 구체적인 뜻(즉, 무슨 마을 어떻게 했다는)이 없고, 그 위로를 왜 좋다고 하는지 이유도 명시되지 않았으니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아니다.
위와 같은 식으로 검토해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표현은, 표현상의 뜻이 없거나 애매 모호한 경우 뿐만 아니라, 두뇌 속 의식계에 "좋은"이라는 의미어(意)를 달고 있는 이미지(識)가 애매 모호한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인 그림(?識)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왜 좋은 사람이라고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 하거나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는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 이다.
나는 여기서 좋은 사람을 단 두 가지 차원에 국한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
마음에서 좋다고 하는 사람, 실제로 자기의 인생에 도움이 된(되는, 될) 사람의 두 가지 차원이다.
마음에서 좋다고 하는 사람과, 실제로 자기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중첩되는(동일인인) 경우(예 : 갑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되므로, 내 마음에서도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다)도 있고, 서로 무관한 경우(갑은 내게 술을 자주 사 주어서 좋은 사람이고, 을은 내게 과음을 자제하라고 조언을 주지만 내 마음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진 않는다)도 있고, 서로 상반되는 경우(선생님은 내가 숙제를 하지 않거나 공부를 게을리 하면 혼을 내어서 도와 주지만, 나는 그를 좋아하기 보다는 무서워서 싫다) 도 있다.
위의 제목은 바로 "좋아"가 차원별로 상반되는 경우를 지칭한 말 이다.
예컨대, 술을 자주 폭음할 정도로 사는 사람을 마음에선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몸 에는 해를 끼치는 사람이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 이다.
반대로 술을 한 번도 사지 않으면서 술 먹기를 자제하라, 술을 자주 사는 그 사람을 멀리 하라는 조언, 충고를 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기로 하면 그가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그의 그런 말을 비난, 간섭, 이간질이라고 나쁘다고 여기면, 그는 -마음 속 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이미지화 된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의 마음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대상이, 나중에 다른 측면에서 재검토해 보면 좋다기는 커녕 나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과거의 마음에서 나쁜 사람으로 여겨 진 대상이, 지금에 다른 각도나 측면에서 검토해 보니 나쁘다 하기는 커녕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던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본다.(물론, 나도 포함되겠지만)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하는 제 마음이 형성되거나, 기억에서 일어나면 그게 과연 왜(그럴만 한 이유, 목적)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바꿔야 하는지, 의미를 무시해야 하는지를 의심조차 해 보려고 하지 않고 맹신에 빠진다.
또 남이 자기에게 나쁘다 하면 펄펄 뛸 일을 남 에게 하고도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는 하고는 마치 대단한 자선이나 행한듯이 기고만장 할 일을 남이 그 이상으로 해도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에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하는 마음이 한번 형성되면 그 마음때문에 자기가 엄청나게 고초를 겪고, 주변의 여럿을 해치고 보복을 받으면서도 그 원인인 제 마음을 의심하여 점검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호인이라는 사람은 호인이 아니라 비호인이다.
당신이 악인이라는 사람은 악인이 아니라 호인일 수도 있는 것 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에서 호인이니, 악인이니 하는 그 것(마음)이 아니라, 그 것(마음)이 당신과 주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