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운다",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비웠다"는 소리들을 드물지 않게 듣기(두뇌로 들이기)도 하고 하기(두뇌에서 내기)도 한다.
도대체 "마음", "비우기" 라는 소리의 뜻이 뭔지 품고 있어서 알고서 하고, 들어서 아는 가?
행여라도 "마음이 마음이고, 비우기란 물통에 물 비우기 비슷한 것 인데 그 것도 몰라!?" 하시지는 마시라.
내 경험에 의하면 그런 소리를 내기도 듣기도 하는 사람 그 누구에게서도 "마음 비우기"가 실제로 일어 났다는 추호의 낌새도 알 수가 없었다.
"감각적으로 접촉이 불가능 한 마음이니 비웠다는 것을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도 하지 마시라.
그렇다면 "(많이는 커녕 조금이라도 있는 줄 조차도) 알 수 없는 마음이라면서 비우기는 어찌 하는데?"
결국 마음 비우기 소리만 요란할 뿐, 그 소리와 관련된 뜻은 공허하여 알지 못 하니, 무엇을 (그 뜻 이라고) 행할수 있으리오.
(소리만 요란하게)비우고 비워도, 비웠다는 소리만 더욱 마음에 쌓여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자료나 되지....
마음을 비운다고 할 때의 마음은 욕(慾),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옳지 않는(不可) 욕심(慾心)을 지칭한다.
욕(慾)이 부가되어 있지 않고 상대적인 비평어(意)만 붙어 있는 식(識)은 의식계의 표면에(현현의식으로) 오래 등장해 있지도, 자주 떠 오르지도 않는다.(潛在化)
(당연히) 상대적인 비평어(意)가 부가되지 않는 식(색성향미촉語)은 의식계의 표면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떠 오르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 두번 이상 재접촉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 이다.
객관적으로 단순한 비교 평가어(意 = 크다, 많다, 이쁘다, 귀하다)에 주관(我)이 부가되면 욕(慾)이 된다.
고로, 주관(我)이 부가되지 않은 의미(意)는 의욕(意+慾)이 아니다.
저 여인은 고상하다(意), 고상한 저 여인과 친하면 나(我) 좋겠다, 친해지기를 원하고 바란다(慾望)는 구조이다.
그 원하고 바라는대로 실현되면 그 욕망이 해소되지만, 실현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실행(표현부터)조차 제대로 못 한다면 [아드레날린] 홀몬이 심신에 타격을 끼치게 된다.
의미의 객관과 주관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그래서 의미심장 하다고 하는지도....)
그냥 이쁘다고 알 뿐 인데 하지만...가지면 좋겠다는 욕망이 붙은 경우도 있고, 친히 지내면 좋지,,,,하지만, 개인적 욕망이 없는 경우도 있다.
남은 물론이고, 그 마음의 임자랄 수 있는 내(정신) 또한 정확히 알아차리기 어렵고도 어려운 일 이다.
그 정체가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점검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걸 확인하는 방법의 하나로 논리적인 자문자답이 쓸만 하다고 본다.
남이 없는 자리에서 제 마음을 상대로 하여 묻고 답하는 방식이다.
해소되지 않는 의미가 붙은 욕망(意慾)은 삶에 여러가지(시간적, 육체적, 비용적) 부담이 되고, 그로 인해 괴로움이 생기고, 부작용(신경과민 또는 과둔, 소화불량, 수면장애, 주의력 감퇴등)이 발생한다.
따라서 조기에 해소되겠금 해야 한다.
그냥 비우기가 가능한게 아니라, 해소되어 질 일을 하는 것이 소위 말 하는 "비우기"의 뜻 이다.
바로 그 마음(욕망)에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옳지 않는(不可하다는) 이유를 확실히, 강하게 붙여야 한다.
그 마음(욕망)이 바로 자기의 삶에 부담, 괴로움, 부작용, 장애를 유발하는 병균과 같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해치는 병균을 축출한다고 강하게 선언하는 것 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가지면 좋겠다던- 그 욕망이, 내 인생만 해치는 악마의 유혹과 같이 여겨져서 남이 가지라고 아무리 유혹해도 속지 않는다.
그게 바로 마음 비우기이다.
누군가가 그 이외의 어떤 뜻을 만든다면, 뜻 이야 내 글과 다를 수 있어도 실제로 마음 비우기는 안 될껄...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