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닦어서 깨끗이 하라,
마음의 때(垢)를 씻어라, 벗겨내라,
순수한 마음을 가져라,
순진무구(純眞無垢)한 마음을 가져라, 등등의 소리를 더러 듣곤 한다.
그런데, 마음이 무언지 알아야 그 먼지니, 때니 하는 것도 알아서 예방, 닦기, 씻기를 할 것이 아닌가?
마음이 마음이지...하는 식으로 안다고 알고서는 무슨 수로 마음을 다스려?
어쩌면 위와 같은 말들이 바로 가지지 말고(예방), 가졌으면 고치고, 바꾸고, 닦고, 씻고, 버리고, 비워야 할 마음일지도 모른다면?
여기서 마음(心)을 다음 세 가지 뜻으로 뜻을 세울 수 있다.
1. 두뇌 속의 개별 의식(意識) 하나를 지칭하는 이름(意識) : 좋아하는 그 사람.
2. 위의 의식(意識) 중에서 정보(識)를 지칭하는 이름(識) : 그 사람(기억)
3. 위의 의식중에서 상대적인 말(意)을 지칭하는 이름(意) : 좋아하는(평판)
통상적인 용어로는 이상 세 가지가 어지러이 혼용되고 있다.
예컨대, 1. 내게는 "그 사람이 좋다는 마음"이 있다. (意識)
2. 내 " 마음(기억)에 그 사람"이 있다. (識)
3.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意)
여기서는 위의 2 (識)를 객관적, 사실적인 마음이라 하고, 위의 3 (意)을 마음(識)에 붙는 먼지나 때(垢)와 같을 수도 있다고
보고자 한다.
예컨대, 자기 얼굴 정보(識)에 "못 생겨서 보기도 싫다"는 마음(意)이 붙어 있다면 그건 먼지나 때 보다도 매우 해로운 병균과 같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마음과 그 것에 붙는 때를 정의해 놓고 본다면, 이 글의 제목과 첫 머리에 열거한 말들의 뜻도 어렵지 않게 이해 가능하리라.
순진무구(純眞無垢)라 함은, 두뇌 속의 그 어떤 정보(識)에도 -주관적인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인 말인 마음(意)을 전혀
붙지 않은(無垢) 정보(識) 그대로(純眞)라는 뜻 이고.
마음의 먼지나, 마음에 붙은 때라 함은, 두뇌 속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주관적인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인 말인
마음(意)이 -먼지나 때 처럼- 붙어 있다는 뜻 이고,
마음의 먼지, 마음에 묻은 때를 딱고, 씻고, 벗겨 내고, 깨듯이 비우라 함은, 위의 마음(意)을 -먼지나 때 같은 마음이라고 여기고- 오직
보고, 들은 그대로만으로 아자고 정리한다는 뜻 이다.
예컨대, 그 사람을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내 마음없이, 오직 그 사람 그대로를 알아 보자 한다는 뜻 이다.
사람이나 사물을 보면서 마음(意)을 거치게 되면, 마음이 투사, 투영되어 알려지게 된다.
마치 색안경을 쓰고 보면 안경색대로 보이듯이.
물론, 모든 마음이 먼지나 때처럼 하잘것 없거나 백해무익한 것 만도 아니다.
보물같은, 보약같은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까지 예방하고 닦아내고, 씻어내라는 뜻이 아니다.
무언가를 아는 순서를 거꾸로 하면 거꾸로 알게 됨을 경계해서 하는 말 이다.
먼저, 있는(사실) 그대로를 정보(識)화 하여서 알고 난다음에, 목적적인 필요와 기준을 적용하여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는 말인 마음(意)을 붙여야 정상이지, 그걸 거꾸로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이 아렵지 않으리라.
예컨대, 보기를 시작하자 마자 좋다거나, 나쁘다는 마음이 생겨서 그렇다고 여겨지면 더 차려서 알기를 그치기 일쑤다.
"좋은데, 무얼 더 이상 볼게 있다고",
"나쁘데, 더 볼 필요 없어".....하는 일이 예사이니까.
나중에 "내가 너무 경솔했나 봐" 하고 후회하지만, 왜 그리 경솔하게 되었는지를 모르니 그런 실수는 고칠 수가 엇다.
마음이라는 때, 그 중에 대표적인 세 가지를 정리해 놓고 마치련다.
1. 객관적, 과학적, 합리적으로 안 된다고 알면서 "그래도 되어야만 해" 하는 불가망심(不可望心)
2. 제 스스로 못 한다고 알면서 "그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불가능심(不可能心)
3. 하면 크게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 "그래도 하고싶어 미치겠어" 하는 불가당심(不可當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