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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과 무아(無我)

나 아닌 내 2021. 2. 3. 01:58

 

무상(無常),

존재의 두 차원 중에서,  바탕이 되는 허(虛)는 항상 텅빈 그대로이지만, 그걸 감각적, 과학적으로는 알 길이 없으니

유상이니 무상이니 할 일도 없다.

그 바탕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찰나의 멈춤도 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항상(常)이 없다(無)", "고정됨이 없다", "불변이 없다"는 뜻 으로 무상(無常)이라 한다.

 

무상이 무의미 하다, 무가치 하다는 뜻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뜻으로 알고 말 하고 들어서 안다.

미세하게 본다면 항상(常)스런 존재는 아무 것도 없지만, 사람이 보는 도구와 방법 여하에 따라서는 빠르게 변하는 것, 느리게 변하는 것, 마치 전혀 변하지 않는 상태같은 것이 있다고 여겨진다.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라고 할 때의 뜻도 마찬가지다.

인생사 어떤 것은 마치 불변일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너무나 빨리 변해 버리곤 한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것도 조만간에 변하고, 쉽게 변할 것 같던 것도 오래 가는 경우도 있다고 여겨진다.

 

무아(無我), [내]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적으로 "내가 없다", "무아(無我)라고" 하는 내가 엄연히 있쟎은가?

 

내게 알려지는 의식(意識) 속에 연극의 "주인공" 같은 "나(我意識)"가 있지만, 그 것이 스스로 사고하고 행위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뜻 이다.

내가 아는 "나"는 의식적 구조물(?) 이상도, 이외도 아니므로 살아있는 사람인 [자기]도, 의사를 결정하는 [내 자신]도 아니라는 뜻 이다.

 

그렇다면 왜 그걸 강조할까?

바로 내 자신의 착각과 혼동을 깨닫게 돕기 위해서다.

내가 자각을 못 하고, 그 기억 속의 "나"를 내(自)라고 착각, 혼동에 빠져서 속박되고 감금된 것 처럼인 상태를 해탈케

돕고자 함이다.

 

"그 인간 생각만 나도 소름이 끼친다",

이런 소리는 두뇌 속 의식계의 주인공인 "나"에서 녹음되었던 소리처럼 나온다.

그 소리 속에도, 그 소리를 내는 마음에도 실제로 사고하고 행위하는 내 라는 존재는 없다.(無我)

 

그러니, 그 "나"는 내 스스로 다루기 나름임을 깨닫기가 쉽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