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편의상 사용하는 "영상(0想)"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쓰고자 한다.
"숫자 0과 관련되는 상상(想識, 想)"이라는 뜻으로.
그 것이 마음의 이치(心理)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사람이 스스로 있게 할 수 있는지 를 연구함을
"영상(0想) 심리학"이라 하기로.
그 영상 심리학을 스스로 활용함을 정신의 힘(神力)이라 한다면,
그걸 주도적으로 활용하지 못 하여 그 것의 지배를 받게 됨을 귀신의 힘(鬼力, 魔力)이라 할 수도 있겠고..
통상적으로 숫자 0은,
대체로 "없다"(無, 제로)는 뜻으로 쓴다,
어떤 수(數)에 0을 가감(加減)해도 아무 변동이 없다는 뜻 으로.
또 어떨 때는 10배라는 뜻 으로 쓰기도 한다.
어떤 숫자 뒤에 0을 추가하여 10배가 되게 쓰기도 한다.
이 두 가지가 두뇌에서 저절로 발생, 변경, 소멸함을 마력이라 하고,
내(정신) 스스로 주도하여 효율적으로 활용함을 신력이라 하련다.
두뇌 속의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이를 통칭하여 識이라 한다)에,
상대적인 언어(意)가 연결된 것을 합쳐서 의식(意識)이라 한다.
의식중의 의(意)를,
내(정신, 주체) 스스로(自) 만든 것을, 정신력의 소산인 [내 마음](제8自意)이라 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 진 것을, 귀신력의 소산같다고 "나의 마음"(제7心意)이라 하련다.
내가, 나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그 "나"를 [내]라고 여겨지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
"알려지는 그 무엇도, 아는 내가 아니"라고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알려지는 마음 일체를,
[내](주체) 아닌 마음(객체)이라고,
마음이라도 [내 마음]이 아닌 "나의 마음"이라고 구별할 수가 있다.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마음 다루기(새로 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가 너무나 쉽게 된다.
환언하자면,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면 마음 다루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된다.
그에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인 [영상(0想) 심리학]의 효용도 정해지게 된다.
그 어떤 마음(상대적인 이유, 목적)도 무시(즉 0에 가깝게)하려고 하면 너무나 쉬울 수도 있고,
사실상 불가능 할 수도 있다.
그 어떤 마음도 그 크기나 무게를 열배, 백배, 천배, 만배, 억배, 조배, 경배로 늘일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줄일 수도 있다.
자기와 주변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도,
지장이나 해로움을 예방, 축소, 제거하려는 목적으로도,
자학, 자멸하려는 목적으로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왕이면,
자기의 삶에도, 자신이 다루기에도, 마음의 안정과 평온에 도움이 되는 일을 숫적으로 부족함 없이 하고,
그 반대되는 일을 숫적으로 남음이 없이 하는 식으로 마음 다루기를 하면 좋을텐데,
그게 왜 그리 복잡하고, 어렵고, 힘이 든다고, 하기 거북하게 여겨질까.....
그게 바로 "나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