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우면 쉽다고 하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하면 그만일텐데,
"왜 쉽지만...." 하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1. 알고 나면 너무나 쉽지만, 모르면 할 수가 없으니(不能) 어려운 정도라 할 수 조차 없다.
2. "어렵다"는 말은 전혀 모르지도 않고, 완전히 알지도 못 하는 상태일 때나 나오는 말 이다.
3. 게다가 실제론 전혀 모르면서, 알기로는 안다고 여길 때는 제대로 하지도 못 하는(不能) 줄 모르고
어렵다고 알게 된다.
바로 "마음 붙이기"니 "마음 떼기"니 하는 일이 위의 3에 해당된다.
보통 사람들이 "마음 붙이고 살아라", "마음을 떼어 버려라" 하는 소리를 듣고도,
"마음 붙이려고, (또는) 마음 떼려고 아무리 애 써도 안된다" 하는 경우이다.
"마음 붙이기, 떼기"라는 말의 뜻(두뇌 속 意識)을 다음과 같이 정립해 놓고, 그리 알고서 실행하는 사람은
위의 1(너무나 쉽다)에 해당된다.
"마음"(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고, "붙이기"(라는 말의 뜻)가 무엇이고, 그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할려는 발상조차 못 하니 위의 2(불능)에 해당된다.
"마음이 마음", "마음 붙이기가 마음 붙이기"라고 아는 사람은, 마음 붙이기를 (그런 뜻?으로) 안다고 알고,
제대로는 모르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하려고 애는 쓰지만 할 수가 없으니 위의 3(어렵다)에 해당될 밖에....
"마음" = 사람의 두뇌 속 기억이나 상상인 어떤 정보(識)에 부가(附加)되어 있는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인 언어(의미어, 意語, 意로 약칭) 일체를 지칭한다.
두뇌 바깥의 어디에도 없고, 두뇌 바깥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이름이나 서술어가 아니다.
예컨대, 큼과 작음(비교어), 좋음과 나쁨(평가어), 옳음과 그름(판단어),취함과 포기(선택), 하기와 안 하기(결정)라는 말은 모두가 상대적 언어이지, 두뇌 바깥의 사실에 관한 서술어가 아니다.
행복과 불행,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이득과 손실등등도 형식은 이름씨(名辭)같지만, 두뇌 바같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
상대적 언어, 즉 마음이다.
이제 "마음"이 두뇌 속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부가되는 상대적인 언어(意)임을 알았으니,
그게 어떻게 형성되어 정보(識)에 부가되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두뇌 속에서 둘 이상의 정보가 비교되어서(비교적인 의미),
어떤 정보(예: 수험지)를 평가하는 기준(정답)에 적용하여(평가적인 의미),
어떤 대상을 가치관(예 : 법률)에 따라서 판단하여(판단적인 의미),
어떤 대상을 필요 여하에 따라서 취사를 선택하여(선택적인 의미),
어떤 의사를 목적에 따라서 하기 또는 안 하기로 결정(결정적인 의미) 된다는 것을.
그 다음에는 위와 같은 상대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두 가지 전혀 다른 점이 있음도 알게 될는지...
1. 지금까지 내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이루어 진 경험과 학습의 산물인 마음(제7心意)과,
2. 이제 부터 내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하여 만들고, 고치고, 바꾸고, 버리고, 인정하고(제7심의를)를 주도하여
내는 산물(제8自意)의 두 가지이다.
이렇게 구별하고 나면,
제7심의(心意)는 내가 스스로 그 것을 그대로 인정하건,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를 할 수도 있고,
제8자의(自意)를 내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바꾸고, 버리고를 함에 있어서 자유 자재할 수가 있게 된다.
두뇌 속 무언가 정보(識)에 "크다"는, "좋다"는, "(가져서) 마땅하다"는, "택하련다", "가지자" 하는 등등의 마음(意)을
만들어 연결하여 의식화 하기도 너무나 쉬운 일이고,
그런 의식에 부가된 기존의 마음을 "작다", "나쁘다", "(가지면) 부당하다", "포기하련다", "하지 말자"는 등등의 마음(意)으로 고쳐서 의식화 하기도 너무나 쉽다.
(혹시 "그렇게 마음 붙이기, 떼기가 어렵다, 못 하겠다" 여기는 분은 이 글 아래에 댓글을 다시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보고싶어 죽겠다"는 마음도 "쓸데없는, 백해무익하다"는 마음으로 바꾸기 너무나 쉽고,
"망하기를, 벌 받아 죽기를 바랄 정도로 미워 죽겠다"는 마음도 "자기 학대만 되는" 마음이라고 버리기도 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