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상대적 구별은 정신의 활동 상태를 유형화 한 것 이다.
먼저, 정신이 그 스스로 두뇌 속 의식계에다 이런 구별을 정형화 해 놓고서,
자신이 어느 유형에 해당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상당한 수준이랄까...경지에 올라야 한다.
위의 제목에 나열된 단어들의 뜻은 고사하고 그런 단어조차 두뇌 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유형에 관하여 전혀 모르니 이런 글이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또, 그런 단어만 저장되어 있을 뿐, 그 단어에 해당되는 뜻(두뇌 속 意識)이 전무하다면,
예컨대, "자각이 자각이고 착각이 착이지"라고 아는 것 이상일 수 없으니, 역시 마찬가지다.
또, 그런 단어의 뜻이 형성, 저장되어 있어도 그 뜻이 이 글의 주제와 연관이 없거나, 너무나
다르다면 그 역시 소용보다는 장애가 되기 쉽다.
그래서 이하에서 제시하는 필자 나름의 뜻은,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해 두고자 한다.
자각 : 두뇌를 운전하여 감각, 운동, 사고기능을 부리는 정신이 스스로(自) 존재해 있음을 깨달음(覺)을
자각이라고 한다. (줄여서 "깨달음" 이라고도 한다)
유일한 자신(唯我)이 -아는 주체와 알려지는 객체로 둘 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알 수가 없으므로,
자각이 중요한 명제가 된 것 이다.
따라서, 내가 "내 자신이라고 아는 것"(즉, 내게 "내 자신이라고 알려지는 것") 일체를 부인하고 남는 유일한
것인, 아는 자 자신이 내 이구나...하는 깨달음이다.
단순하게 깨달음이 없는(不覺) 상태가 아니라,
아는 주체인 [내](自)게, 알려지는 객체인 "내 자신(我意識)"이, 주체인 [내] 자신처럼 여겨짐을 착각(錯覺)이라고 한다.
각(覺)은 있으되, 스스로(自)를 향한 각이 없고, 그 자리에 가짜의 주체가 섞여(錯) 있다고 착각이라고 한다.
예컨대, [내]가 주체로서 객체인 독사진을 보면서 "이게 내 자신"이라고 아는 것이 착각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주체로서 아는 객체인 의식계 속의 "그리워 하는 나", "미워하는 나"를 내 자신이라고 아는 것도
착각이다.
자주 : [내] 스스로(自)의 개달음(覺)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감각, 운동, 사고기관을 부림을 자주적 유형이라 하고,
[내]가 깨어 나 있을 뿐, 두뇌가 기계적, 자동적, 즉흥적, 의식적으로 위의 기능이 수행되고, [내]는 그 것을
[내] 스스로 하는 것 처럼 착각과 혼동에 빠져서 따르기만 하는 것을 종속적 유형이라 한다.
능동 : 내가 스스로의 [말]로 두뇌를 운전하여 감각, 운동, 사고기능을 구사함을 농동적 유형이라 하고,
내 스스로의 [말]이 없이 두뇌가 학습적 바탕으로 기계적, 자동적으로 하는 것을 피동적 유형이라 한다.
적극과 소극, 창조와 답습도 위와 유사한 뜻 이다.
이상의 구별만 제대로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으면,
그 누구도 자각, 자주, 능동, 적극, 창조적인 (정신) 자세로 임할 것 이지만,
그런 구별을 전혀 모르고 못 하면 착각, 종속, 피동, 소극, 답습적인 관행적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