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입으로 내는 소리들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큰 일이다, 사소한 일 이다.(大小)
-. 가벼운 일 이다, 무거운 일 이다.(輕重)
-.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是非)
-. 좋다, 나쁘다.(好惡)
-. 사랑스럽다, 싫다(愛嫌)
-. 옳은 일 이다, 그른 일 이다. (可否)
-. 취하련다, 버리련다. (取捨) 등등......
사람의 두뇌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차원에는 위와 같은 말에 해당되는 사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의 두뇌 속에서만 형성되는 상대적인 언어(意)인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그 두뇌 속에 있지, 두뇌 바깥의 어디에 그 사람의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과 같은 사실이, 자기두뇌 바깥에 실존한다고 알고 있다.
어째서 그런 일이 발생할까?
바로 의식적 투사, 투영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은 저마다의 키(신장) [그대로]를 사실로 가지고 있다.
큰 키도, 작은 키도, 적당한 키도, 부적당한 키도 아닌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본인을 포함하여 타인이 보기에 큰 키라느니, 작은키라느니 한다.
그 사람의 키를, 내 두뇌 속에서 딴 누군가의 키와 비교하거나, 모집 요강에 정해 놓은 키와
비교하면 혹은 크다, 혹은 작다, 혹은 적당하다, 혹은 부적당하다는 등등의 비교적 평가와
판단이 -내 두뇌 속에 의식(意識)으로 - 형성 된다.
그 의식이 매개되어, 그 의식을 통하여 보게 되면, 그 의식이 투사, 투영되어 보이게 된다.
마치 백지를 색인경을 거쳐서 보게 될 때 투사, 투영되어 보이는 것 처럼.
그런데 사람마다의 두뇌 속에 형성되는 마음(意識중의 意부분)이 저마다 다르기 일쑤이고,
유사하거나 같기가 오히려 드물다.
그래서 (예컨대) 월급액 500만원을 "많다", "큰 돈이다", "(많아서) 좋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적다", "보잘것 없는 액수", "(적어서) 싫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위에 열거한 수식어들이 사람의 두뇌속 마음이 아니라, 두뇌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 그렇다거나, 사실의 속성이 그러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끼리는 제가 아는 마음과 다른 말을 들으면 이해가 안 되거나 터무니없는 말 이라고
오해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큰 금액을, 보잘것 없는 작은 돈이라고 하다니....하는 식으로)
살다보면 이런 마음들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혼란스러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사람들 상호간에 의견(마음표현) 차이로 인한 갈등도 흔히 발생한다.
그 모든 난관과 갈등의 원인은 지극히 단순하다.
"왜(누구의 무엇을 위하여) 그런 마음을 만들어서 가지는지?" 하는 질문으로,
그런 마음을 만들고 다루는 기준을 확립하지 않아서다.
고로 그런 기준만 만들어서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거나, 조기에 쉽게 해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