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두 글자는 같아도, 그 앞 주격(主格)의 자리에 있는 "너"와 [네]가
글자 형식도, 테두리 기호도 다르다.
그 두 글자의 뜻(두뇌 속 意識)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에 대등하는 말이,
[네]가 아는 "너'라는 말 이다.
앞의 [내]와 [네]는 아는 주체이고, 뒤의 "나"와 "너"는 알려지는 객체이기 때문이다.
소위 근심, 걱정, 불안, 공포, 고민, 고뇌, 여한이니 하는 것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
하거나 상당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해 주어야 할 말이 바로 다음 둘 이다.
[네]는 '너'가 아니다.(알려지는 객체인 "너"는, 그걸 아는 주체인 [네]가 아니기 때문에)
고로 '너의 마음(고민, 고뇌, 근심, 걱정, 여한, 번뇌, 불안, 불평, 불만 등등...)"은
[네 마음]이 아니다, 라는.
[네]는 "너"를 [네 자신]이라고 알고 확신할 수도 있다.
[네]가 아는 "너"가 바로 [네 자신]이라고 고집 불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 이다.
아는 자(주체)에게 알려지는 것(객체)은 그 이름이 "내"이건, "나"이건, "내 자신"이건,
"나 자신"이건, "자기 자신"이건 결코 스스로 아는 주체일 수가 없다.
그대가 "내 자신아" 하고 불러 보라, 대답하는 자 있는가?
사람들의 근본적인 정신미숙이 자각없음이다.
그 미숙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질환이 객체를 자신이라 아는 착각이고, 혼동이다.
되느냐, 안 되느냐 (가변성 여하)
하느냐, 못 하느냐(가능성 여하)
돼느냐, 안 돼느냐(가당성 여하)
그러냐, 아니냐(시비여하),
좋으냐, 나쁘냐(호오 여하)
옳으냐 그르냐(가부 여하)등등의 마음(意)은 차원이 서로 다르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는 그런 것이 서로 다른 차원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제 멋대로 얽히고 설킨다.
안 되는 일을 대상으로 좋다느니, 그르다늬, 마땅하다느니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다고.....
못 하는 일, 하면 안 돼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나의 마음"을 [내] 이미 거의 완벽하게 정리, 청소해 버렸다.
[네] 또한 하려고만 하면 너무나 단순하고 쉽고 수월한 일 이다.
[내]는 [내](주체)이고, "너"는 내겐 남(객체)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