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상식을 들어 보자.
"(누구나)좋은 걸 좋아하고, 싫은 걸 싫어한다",
"(누구도) 좋은 걸 좋아하지 않고, 싫은 걸 싫어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좋은 걸 싫어하고, 싫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리라.
또 한편 사람들이 더러 하는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좋아서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좋아하지 않고 싶은데)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싫어서 괴로워 죽겠는데, (싫어하지 않고 싶은데) 싫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잊어버리거나 반대로 마음 먹지를 못 해서 너무나 괴롭다" 하는 등등....
이런 푸념을 늘어 놓는 사람이나 그걸 듣는 사람이나 그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좋은(好意) - 것(사람, 사물, 일, 현상등에 관한 두뇌 속 기억인 識)" 이라는 단어의 뜻,
그 것으로 지칭되는 것의 정체를 모른다.
"나쁜(惡意) - 것(사람, 사물, 일, 현상등에 관한 두뇌 속 기억인 識)도 마찬가지.
"나쁜 것"을 "싫은 것"이라고 혼용하기도 하지만, "싫은 것"은 "싶은 것"의 반댓말이다.
"좋아(好評)", "나빠(惡評)"는 마음중 비교 다음인 평가 단계에서 형성되는 것 이다.
"나빠"를 "싫어"라고 혼용하기도 한다.
"좋아한다"는, 좋아(호평)를 표현, 가까이 있게 실현하려고 바라고(意慾), 실행한다는
뜻 이다. ("싶어 한다"고 하기도 한다)
"싫어한다"는, 나빠(악평)를 표현, 멀어지게 실현하려고 바라고(意慾) , 실행한다는
뜻 이다.(멀리한다, 거부한다, 배척한다, 파과한다 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내가 갑과 을을 모임에서 만나고 집에 와서 기억을 떠 올려 놓고 두 사람을 비교해서
평가해 보니 "갑 기억(識)에는 좋은(호의, 호감이라고도 함) 마음"이, "을 기억(識)에는
나쁜(惡意, 혐오감, 거부감 이라고도 함)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것이 바로, 이 두뇌 속의 "좋은 사람", "나쁜(싫은) 사람"의 정체이다.
그 사람 자체(실제 사실)는 있는 그대로일 뿐, 추호도 좋거나 나쁜 것이 없다.
그 사람을 만난 기억의 어디에도 좋거나 나쁜 것이 추호도 없다.
단지, 두뇌 속에서 그 두 사람에 관한 기억들이 비교적으로 평가된 결과로
"갑이(을에 비하여) 좋다, 을이 (갑에 비하여) 나쁘다"는 상대적 언어(즉 意인 마음)가
형성되어 있을 뿐 이다.
이제 다음으로 판단(判意)이라는 마음이 형성되는 수가 있으니,
좋아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이 가망성 있느냐, 가능성 있느냐, 가당하냐, 적법하냐,
타당하냐, 합리적이냐, 합목적적이냐, 효율적이냐, 안전하냐 등등의 판단 작업이다.
물론, 그런 판단이 거의 없이 이루어지는 "좋아하기(싫어하기)" 판단, 선택, 결정도 있고,
그런 판단, 선택, 결정을 꼼꼼하게 챙기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부실하기 그지 없다.
마음을 [자기의 삶을 위해서]라는 기준을 뿌리에 두고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을 -
단계별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관리해도 실수를 피하기가 결코 쉽지 않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 마음이란 것의 대부분이 진정한 [내 마음](제8 自意)이 아닌 소위 '나의 마음"인 제7 心意이다.
[내] 스스로 만들거나 다룬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 것이 어떤 경로로 형성되었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 마음의 실태가 어떤 것인지도 [내]가 모르는 것이 허다하다.
"왜 그 것을 좋아하느냐?" 하는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자기의 삶에 필요하고 유익한 것 이라서 좋고, 그래서 가까이 하려고 좋아하고, 그렇게 실행함이
가망성, 가능성, 가당성이 있고, 법이나 윤리 도덕에 어긎나지 않고 결과가 효율적이라고 예측되
니까 좋아한다]는 식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과연 어느 정도나 그러할까?
1차 비교를 거쳐서 2차 평가 단계에서 "좋은(好意)" 마음이 형성되었더라도, 다음 판단 단계에서
가망없음, 가능성 없음, 부작용과 역효과, 위법부당, 비효율등 판단을 거치면서 "좋아하지 않기"로
선택하여 결정할 수가 얼마던지 가능하다.
때문에, 설사 모르고 그냥 "좋아하고" 있더라도, 나중에 판단과정을 거칠 수가 얼마던지 있지만,
그걸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래서 매우 현명한 사람은 비교는 물론이고 "좋아와 나빠(好惡)"의 평가단계 부터 실수가 없도록
성찰하겠지만,
아주 우매한 사람은 비교의 단계부터 백해무익한 비교, 평가에 집착되어 인생을 마치 "미친 황소"같은
마음에 끌려 온갖 고초를 벗어나지 못 한다.
현명한 사람으로선 남은 물론이고, 자신이 좋아하던 것도 싫어할 필요와 유익이 있다면 추호의
망서림도 없이 "지급부턴 좋아 안해!", "이제 부턴 싫어한다"고 두뇌에다 엄중하게 명령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전적으로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