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나를 사랑하던) 내게, 또 다른 내가 온 거야......

나 아닌 내 2023. 9. 24. 19:32

김종서가  부른 "아름다운 구속" 노랫말중 일부이다.

"내게 내가 왔다"는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는 잠시 젖혀 두고 그게 가능하다면

다음과 같은 일도 가능할 수 있겠다.

 

내가, (찾아 온) 내게 말을 건다.

1). 가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계속 곁에 있으라고.

2). 오지 말라고, 돌아 가라고, 사라져 없어지라고.

 

(찾아 온)내가 내게 말을 걸고 내가 듣는다. 

1). 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돌아 가겠다 하고 간다, 사라지겠다 하고 사라진다.

2). 계속 오겠다고, 돌아 가지 않겠다고,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않겠다고 한다.

 

위의 어느 경우도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오라 한다고 오고, 가라 한다고 가는 일을 [내]게 오는 또 다른  [내]가 한다고 알

길이 전혀 없다.

 

그런 말 조차 [내]가 할 수는 있지만, 그런 또 다른 내를 상대로 삼을 수가 없다.

상대로 삼을 만한 실체를 찾지 못 해서다.

결론은, "또 다른 내"는 마음(意)에 붙여 진 이름뿐인 공허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나 말고는 사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만 사랑한다"는 마음(意)이 있었는데,

그 것에 대(對)하여 아는(知) [내]가 자각하지 못 하고, 그걸 [내]라고 착각에 빠진 것이

"나를 사랑하는 내"라는 환상이다.

 

그 실체는 "나를 사랑한다는 마음(意)"이고, 그 환상이 "나를 사랑하는(意) + 내(自)"

라는 착각의 산물(?)이다.

 

마찬가지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마음(意)" 이라는 실체를 "그 녀를 사랑하는(意) + 

내(自)"라고 착각에 빠진 것 또한 환상이다.

 

실제 [내]는, [내]게 알려지는 그 모든 "나"이건, "내"이건이 아니다. 

[내]게 또 다른 내가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알려지는 '나'(我意識)를 [내] 자신이라고

착각에 빠져서 발생하는 환상이 "또 다른 내"의 정체이다.

 

그런 착각에서 발생하는 환상은 무수하지만 거의 모든 인류가 그런 줄을 모른다.

 

두뇌 속의 [내] 앞에,  떠 올라 있는 "첫사랑 그 남자를 그리워 하는 마음(我意識)"을

대(對)하여 아는 순간에 자각을 못 하여, 그 것이 [내]라고 착각에 빠져서 환상적인

주인공 처럼 된다는 것을.

 

두뇌 속의 [내] 앞에, 떠 올라 있는 "원수같은 그 인간을 미워하는 마음(我意識)"을

대(對)하여 아는 순간에 자각하지 못 하여, 그 것이 [내]라고 착각에 빠져서 환상적인

주인공 처럼 된다는 것을.

 

두뇌 속의 [내] 앞에, 떠 올라 있는 "산다는게 무의미하다 죽고싶다는 마음(我意識)"을

대하여 아는 순간에 자각하지 못 하여, 그 것이 [내]라고 착각에 빠져서 자살극을 연출,

실천하는 주인공 처럼 된다는 것도.

 

두뇌 속 [내]가, 두뇌 속에 "살게 하라는 명령(生命)은 지고하다, 성실히 돕자" 하는

마음(我意識)"을 스스로(自) 만들어 놓고 실천하면 위의 착각과 환상은 해소된다.

 

내게 알려지는 그 어떤 고견(高見)이건, 귀견(貴見)이건, 중견(重見)이건 그 모두가

[내]겐 하나의 대상, 그 이상도 이외도 아니다.

그 것에 [내] 스스로(自) 말미암아서(由) 어떤 뜻(自意)을 붙이건, 고치건, 바꾸건,

떼어 버리는 일 모두가 [내] 불변의 자유 이다.

 

과연, 누가 그 일에 무슨 수로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는가?

단지 [내]가 우매하여 그런 줄을 몰라서 문제될 수 있을 뿐 이지.... 

 

그리움, 미움등 온갖 미련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깨달음(自覺)

없는 착각이 유일한 원인이고 해답일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