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樂)에 온갖 것이 있다.
다 즐거움이라는 점에선 같다.
갖 가지 즐거움에다 "옳고 바른(正)", 또는 "그른(誤)" 이라는
상대적인 딱지(언어, 문자형식)를 붙일 수가 있다.
그런 마음이 붙여지면(附加되면), 그런 마음대로 인지된다.
어떤 즐거움(樂)과 마음(意)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볼 수 있겠다.
1). 즐거움만 있고, 그 것에 어떤 마음(의미)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無心)
2). 좋다는 등 긍정적인 마음(肯意)이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3). 나쁘다는 등 부정적인 마음(否意)이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4). 의미없다, 무의미 하다는 마음( 위 1) 無心과는 다르다)이 연결되어 있을수 있다.
그런데 위의 2), 3), 4)의 경우에 그런 마음을 형성케 된 상대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지금까지 관심은 커녕 의문조차 가져 본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컨대,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좋은 (즐거움)" 이라 하는 건지 모호하다 못해
그런 기준이 있기나 한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즐긴다 함은, 그 즐거움에 좋은(好意)이라는 마음이 연결되어 "좋아하는
(好意) 즐거움(識)", "즐거움(識)을 좋아(好意)"를 그 사람의 정신이 따라(맹신, 맹종)
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樂)이 자기의 삶에 필요 유익한 건지, 무익 유해한지를 기준으로 비추어서
검토해 보고 선택할 완전한 자유와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내] 스스로의 본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률적, 도의적, 윤리적으로 하지 말라고 금지되는 일이 왜 정해지게 되었을까?
그게 "좋다고(好意) 즐기기(識)"가 의식되어서 추구하는 사람(그 정신)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나쁘다고(惡意) 회피, 배척하기(識)"가 의식되어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라는
의도에서 갖 가지 금지가 정해 진 것 이다.
흡연, 마약, 도박, 도둑질, 폭행, 파괴등 범죄(識)에 "나쁘다, 괴롭다"는 마음(否意)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일반적 보편적인가, 소수의 특수한 얌심가(?)에 불과한가?
오히려 "위에 열거된 그런 행위(識)"에 "재미있다, 이득이 적지 않다, 즐겁다"는 마음(肯意)
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보고 금지가 필요했던 것 아니겠는가....
사람의 두뇌속 의식계에는, 그 본인게는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해로운 온갖 마음(惡意)이
암약하고 있다.
따라서 그걸 추구하는 즐거움이 과연 옳고 바른지, 그른지를 진지하게 검토, 확인, 선택,
결정해야 하는 일은 너무나 중차대한 [내] 본분이 아닐 수 없다.
상낙아정(常樂我淨)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을 여러가지로 풀이하지만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자 한다.
상(常) :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항상, 변함없이"라는 뜻.
낙(樂) : (항상, 변함없이) "즐겁다"는 뜻.
아(我) : (자기 자신에 관한 의식인) '나'라는 뜻.
정(淨) : (위의 '나'에 3불가심 이라는 더러움이 없어서) "깨끗하다"는 뜻.
이 상낙아정이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위의 '나'가 아니라, 그걸
다스려서 깨끗하게 해야 할 주체라는 뜻이다)의 깨달음과 실천이 필수적이다.
불교에서 진정한 [붓다]의 차원에서는 본래부터, 항상 변함없이 깨끗하여 즐겁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 같다고 보기도 한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