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이 블로그)서는 누차에 걸쳐서 "마음(心)은 두뇌 속 상대적인
언어(意)"라 한바 있다.
무엇과 무엇을 비교,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평가,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판단, 무엇과 무엇중에서 선택, 이럴까 저럴까 중에서 결정등
모두가 두뇌 속 상대화 작업의 결과로 상대적 언어(意, 즉 마음)가
생성된다.
사람의 두뇌 속에서 형성되는 마음(意)이, 그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
향은 대부분 사람들에게서 거의 절대적이다.
예컨대 "좋다"는 마음(好意)이면 그 것을 가까이 하거나 가지려고 애(정신력)
와 기(체력)를 쓰고, "나쁘다(싫다)"는 마음(惡意)이면 그 것을 멀리 하거나
없게 하려고 애와 기를 쓴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 자본, [에너지]를 쓰고도 원하는 대로 하지 못 해서,
또는 하고서도 성취하지 못 해서 개인적인 불평, 불만, 불행과 인간관계에
불화와 투쟁이 끊임 없으니......
그런데 조용한 가운데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노라면, "과연 그런 마음이
"도대체 누구의 무엇에 소중해서?"라는 의문을 만들어 볼 수가 있다.
그 것을 왜(누구의 무엇에 소중하기에) 좋아(또는 싫어) 하는가, ....
하는 의문조차 전혀 없이 그저 "좋으니 좋아하지", "나쁘니까 나쁘다
(싫다)하지..." 할 뿐 이다.
어째 기이하지 않는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
그 인간의 두뇌 속에 있는 정신과 사고체계가 ,
그 사람의 삶을 도와도 모자람이 많을텐데, 그 소중한 시간, 힘(정신력,
체력), 자본등 을 비효율적으로 쓰고 역효과 부작용도 초래하다니....
만약에, [자기(또는 누군가)의 삶을 안전하게, 건강하게, 순탄하게,
조화롭게 영위해 가는 일에 소용되는 바 중대하기 때문] 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적용하여 마음 다루기(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를 한다면
소위 "마음 고생", "몸 고생", "정신적 부담", "인생 고난"의 거의 대부분이
생기지 않거나, 조기에 해소될 것 이라고 보는데 귀견 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