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끼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라", 또는 "마음을 그만 놓아라" 느니,
"마음을 단단히 만들어(먹어)라", 또는 "그 마음을 없새라" 느니,
"그 마음을 바꾸어라", 또는 "그 마음을 절대로 바꾸지" 말라 느니,
"그 마음을 고쳐라" 또는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해라" 느니 하는
등등의 소리들을 하고(주고) 듣는다.(받는다)
그런데 위 에서 왜 그런 "말"을 주고 받는다 하지 않고, 그런 "소리"
를 하고 듣는다 하였을지 의문이라도 품어 보는 이 드물리라...
그냥 "말" 이라 하거나 "소리"라 하거나 같은 뜻 이겠거니....하는
짐작에 빠져서 말 이다.
사람의 두뇌에서 겉으로 나온 위의 글(읽으면 나오는 소리)은
말의 "형식"인 기호이다.
그 실질인 뜻은, 그걸 말이라고 사용하는 사람의 두뇌 속에
저마다의 의식(名, 識, 意)으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뜻 없이 사용하는 경우를 크게 보자면,
1). 그 말(글) 형식은 저장되어 있는데 뜻(意識)이 전혀 없는 경우(無意識)
2). 그 말 형식과 같은 것을 뜻 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경우(同語反復)
3). 그 뜻(意識)이 불완전하게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모두 포함된다.
이 글의 제목과 이하의 글, 그 뜻을 이해하려면 두뇌 속에 다음과 같은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첫째, 마음을 다루려는 자 스스로(自)의 깨달음(覺), 즉 자각(自覺)을
하고 있으면서 [내] 스스로 마음 다루기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마음(意識)속 주인공인 '나'를 [내]라고 착각에,
그 '나'의 주장(我意)이 [내] 스스로의 뜻(自意)으로 여겨짐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마음을 다룰 주체가 [있으나] "없는 것 처럼" 되기 때문이다.
둘째, 마음이 두뇌 속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연결되어 있는
정보들 끼리의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 작업의 산물인
상대적 언어라는 정체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마음을 모르는채로 모르는 마음을 어찌 다루겠는가?
셋째, 두뇌 속에 있는 마음을 -불변의 거리로 떨어져서 서로 오, 갈수
없는 상태로- 마주 대(對)하고 있는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잡음/
놓음, 만듬/없샘, 바꿈/안 바꿈, 고침/안 고침이란 말의 뜻 인지를
정확히 의식하여 알아야 한다.
다루는 방법을 모르면 그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 다루기는 그 모두를 [내] 스스로의 [말]로 두뇌(의식계)에다
질문과 명령의 형식으로 한다.
오직 그 뿐 이다.
마음을 만드는(生心) 말은 두뇌에다 "이 것(사람, 사물, 일)을 딴 것(사람,
사물, 일)과 비교해서 (예컨대)크기를 비교해 보자"고 작업을 명령하여
그 결과(어느 것이 크다/작다)를 확인하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로 "이 것을 기호(嗜好)를 적용하여 평가해 보자"고 작업을 명
하여 그 결과 (어느 것이 좋다/나쁘다)를 확인하면 그만이고,
"이 것을 어찌 함이 규범에 비추어서 타당한지 부당한지 판단해 보자"고
작업을 명하여 그 결과(어느 것이 타당/부당)를 확인하면 그만이고,
"이 것과 저 것을 취하면 그 예상되는 효율을 비교해서 선택하자"고
작업을 명하여 그 결과( 어느 것을 선택/제외)를 확인하면 그만이고,
"이 일을 하는 게 인생에 도움(또는 해로움)이 될까 안 하는 게 도움(또는
해로움)이 될까 종합적으로 결론을 짓자"고 작업을 명령하여 그 결과
(하자/하지 말자)를 확인하면 그만이다.
이상 작업 과정중이나 종료 후에도 [내] 스스로의 [말]로 질문하고 명령
하여 두뇌의 작업에 개입하여 통제할 수도 있다.
마음 없새기는 "이 마음이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나, 해로움이 되나?" 하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결과)에 "비교적으로 해롭다", "해로움이 많다",
"백해무익" 이라는 것이 있으면 "이 마음은 당장 없새자"하고 엄중히
명령하면 그만이다.(두뇌는 기계, 도구와 같아서 스스로 사고하는 주체
가 아님으로 오직 [내]게 -컴퓨터 처럼- 순종(?)할 뿐 이다)
마음 잡기 놓기도 위와 같은 요령으로 모두 [내] 말만으로 할 수 있다.
그 어떤 마음에다 평가, 판단, 선택등 작업 결과를 연결하여 "(마음을)
단단히 잡자"거나, "(마음을) 놓아 버리자"는 명령만 해 주면 그만이다.
마음을 (통채로) 바꾸기는 [내] 스스로의 말로 두뇌에다 질문하여 마음을
다르게 바꾸려면 어떤 작업을 하면 될까를 질문하여 그 대답을 듣고서
그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인생에 효율적일지를 질문하여 대답을
듣고서 그 결과에 따라서 "(그 마음을) 이렇게 바꾸자"고 명령만 하면
그만이다.
마음을 (부분적으로) 고치는 일도 위와 다를 바 없으니 생략한다.
마음 작업을 [내] 스스로 안 하기는 너무나 쉽지만, 그런다고 마음(
제7 心意)이 제 멋대로 생기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지는 일이 없거나
적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 스스로 만들거나 통제한 마음도 자기 인생에 무해 유익하기만
하다는 보장이 결코 없는데, [내] 가 방치해 두어서 방자(放恣)한
마음이 기세 등등하게 설치면 자기 인생이 어찌 되겠는가?
소위 "마음(意識중의 意 부분)"이 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중차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웅변으로 증명해 주는 말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람의 모든 일을 마음이 짓는다) 이다.
이상의 글을 대략적으로라도 이해하고 활용하려고 결심만 하면 마음
다루기는 너무나 쉽지만(필자는 이미 실험으로 확인),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우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