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그 정신이 아는 것만 안다.
1). 그 정신이 아는 것은,
2). 그 순간에 두뇌 상층부에 떠 올라 있는 마음(意識) 뿐 이다.
여기에 예외는 추호도 있을 수 없었고, 없고, 없을 것 이다.
그런데 기괴한(?)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극히 희소하다는 것 이다.
그 원인은 [내] 스스로(自)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 모르면서
- [내] 아닌 것을 [내]라고 안다는 믿음에 빠져있는- 착각(錯覺)
에 빠진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이 사람(자기)의 두뇌(우) 속에 있으면서 잠 들었다,
깨어 났다 하면서 두뇌(좌)를 상대로 온갖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의 하나가 좌뇌에 떠 올라있는 마음(意識과 意思, 意慾, 意志
등)을 아는 일 이라고 안다면 위(이 글 첫 부분)의 1)과 2)를 이해
하기 쉬울뿐만 아니라, 추호도 이의를 댈 수가 없으리라.
그렇게 이해하게 되면,
그 어떤 순간에 아는 것이 양적으로 부족함 없이, 질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판단을 결코 할 수 없으리라.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것(현현의식)에 의심(疑心=마음에 의문을
연결함)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를, 주로 남을 의심한다"는 통상적인 뜻이 아니라, 제가 아는
것에 의문을 만들어 연결해 놓고서 그 해답을 모색, 강구한다는 뜻
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 사람(자기)의 삶 운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의 -양적(量的)으로- 몇 %나 될까?
알고 있는 것이 질적(質的)으로 어느 정도나 정확할까? 하는
의문, 즉 그 순간에 [내]가 아는 것(意識)에 관하여 의문을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이득을 올릴 수 있다"는 마음,
"가족의 긴급한 요구에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빌려 주어야 한다"는
마음,
"직장이 재미없어서 도저히 다니기 싫다, 그만 두고 싶다"는 마음,
"우리 집이 부자니까 내 앞 길은 걱정없어, 즐기면 된다"는 마음,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포기하자"는
마음"
위와 같은 마음이 떠 오르면 사람들(그 정신)은 어떻게 응하는가?
-. 먼저 과거로 부터 현재에 이른 상황파악이 되어 있는지 의문을
만들어 보는가?-. 또, 지금 이후에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代案)을 폭 넓게 탐색하고 그걸 선택했을시의 결과 예측을 해서
보는가?
-. 자기의 삶을 안전, 건강, 순탄, 조화롭게 운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효율적 검토를 해서 보는가?
소위 반성이니, 자기성찰이니, 역지사지니 하는 일의 모두가 제
마음에 의문을 품는(의심)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존의 의식(소위 "선입견", "고정관념") 만으로 무슨 반성이,
성찰이, 역지사지등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마음(의식구조) 상태일까?
남으로 부터 "지금 그대가 아는 것이 부족하다, 부정확하다"는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지?" 라는 의문이나 가져 보는가?
그러면 스스로라도 확인해 봐야(차려서 알아야) 할 텐데 말 이다.
후회, 자포자기, 파괴적 행패등 그 모두가 우매한 내 탓(自責)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