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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진 것 없이 다" [(가지고) 있는 삶].

나 아닌 내 2024. 11. 4. 15:33

1). 못 가진 것 없이 다 가지고 있는 삶,
이라는 13 글자를 읽으면 어떤 뜻으로 이해될(느껴 질)까?

2). 위의 13글자에 " "와 [ ] 기호를 사용하여 제목과 같이
"못 가진 것 없이 다"와 [가지고 있는 삶]으로 구별 가능하겠금
표기해 놓으면 어떤 뜻 으로 이해될(느껴 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 "와 [ ]를 무시하고 13글자 그대로만을
뜻 이라고 알리라.

소수의 사람들만이 "왜, 무슨 뜻 으로 저렇게 표기해 놓았지?" 라는
의문을 만들어 보리라.

더 소수의 사람들만이 " " 안에 들어 있는 7 글자의 뜻과 [ ]안에 들어
있는 6글자의 뜻을 그 나름대로 파악해 보려고 시도하리라.

" "는 두뇌 속 의식(意識)을 표현하는 글, [ ]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
인 사실을 서술하는 글 이라고 구별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못 가진 것 없이 다"는 두뇌 바깥에 있는 [사실]을 표현하는 서술어가
아니다.
두뇌 바깥에는 그런 글에 해당되는 사실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못"은 대체로 "잘"과 상대적인 언어(意)이고, "가진" 또한 "안(또는 못)
가진"과 상대적 언어(意)이고, "없이"는 "있어(또는 없지 않는)"와 상대
적인 언어(意)이고, "다(전부)" 또한 "다 아닌(또는 일부)"과 상대적인
언어(意) 즉, 두뇌 속의 마음(心)이다.

그러니 "못 가진 것 없이 다" 역시 합쳐진 마음일 뿐, 두뇌 밖 실제의
[사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바로 [이 것]을 "못 가진 것 없이 다"라 한다고 제시할 꺼리가 추호라도
있는가?

위 제목에 [(가지고) 있는 삶]이라고 표기해 놓은 이유는,
"가지고"나 "있다" 또한 "안 가지고"와 "없다"와 상대적 언어일 수도
있지만, 두뇌 바깥에 실제로 있는 무언가를 지칭하면서 "가지고",
"가지고 있다" 할 수는 있기 때문에 절대적 서술어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 가지고", "있지 않다", "없다"는 등등의 상대적 언어는
두뇌 바깥에서 그 근거를 추호도 제시할 수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고 본다.

그렇지 않는가?
돈이 있다는 것은 절대적 서술어일 수도 있지만, 상대적 의미어
일 수도 있다.

반면에 빈 주머니나 빈 금고야 쉽게 보여 줄 수 있지만 "돈이
없는 사실" 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는가?

"없는 것"은 두뇌 속 의식(意識)으로는 있을 수도 있고, 흔히 있기도
하지만, 두뇌 바깥에 실제 [사실]로는 있을 수가 천혀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이 드물다니...참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는 없지만, 두뇌 속에만 있는 "없는 것" 때문에 겪는 사람들의
심리, 정신적 괴로움, 그리고 골 부터 파생되는 부작용이 얼마나 중차대
한지, 알고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돈이 없어서("없는 돈"이 있는데 없어서?) 괴롭다는,
-재수가 없어서("없는 재수"가 있는데 없어서?) 괴롭다는,
-재미가 없어서("없는 재미"가 있는데 없어서?)괴롭다는,
-해결책이 없어서("없는 해결책"이 있는데 없어서? 괴롭다는 사람이
드물던가?

사람은 누구나 생존해 있는 동안에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살아 간다.
그 에서 더 가지지도, 덜 가지지도 못 하고 살아 간다.

그런데, 그런 실제의 [삶]을 상대적으로 보는 두뇌 속의 의식계에는
"더 가진" 또는 "덜 가진", "없는 것이 많은", "있는 것이 없는"
등의 상대적 언어(意, 즉 마음)가 삶이라는 것(識)에 연결되어
있는 일이 거의 보편적일 정도이다.

그런 마음(意)이 연결된 삶(識), 즉 두뇌 속 "삶의식"을 통하여,
실제의 [삶]을 보면, [삶]이 마치 그런 마음(意) 그대로 실제로
있는 것 처럼 투사(投射) 투영(投影)되어 알려 진다.

예컨대, [월 수입 300만원을 가지고 삶]이 그 순간의 절대적
[사실]이지만, "부족한 돈이 많은" 이라거나, "수입이 풍족한" 이란
마음(意)을 연결해서 [삶]을 보면 마치 실제로 그런 [사실]인 것
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누구나 실제로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제기해 보이려는 문제는,
[삶]을 사실 그대로 보지 않고, 마음(意)대로 보게 되면 마음(意)
그대로의 [삶]이 실제로 있는 것 처럼 해괴한 "삶"의식에 빠져서
환상적 놀음에 빠지게 되는데 그걸 예방 또는 탈피하려면 어찌
해야 하나? 이다.

진심으로 "없는 것 없이 다 가진 삶" 이라고 의식되어 여겨지면 만족을,
"제대로 가진 것 하나 없는 삶"이라고 의식되어 여겨지면 불만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게 소위 "마음 먹기(또는 마음 먹히기)" 나름일 뿐
인줄 모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만족, 기쁨, 즐거움, 행복을 구하려고 무거운 바위를 지고 끝없이
오르려고 발버둥치는 마음의 노예, [시지프스]의 후예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깨달은 정신도 있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는 각 자의 [내] 하기 나름이다.

그 누구의 [삶]도 [있는 그대로]일 뿐 "비교적", "평가적", "판단적", "선택적",
"결정적"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그 사람의 두뇌 속 "삶(의식)"에는 온갖
상대적인 마음(意)이 연결되기도 떼어지기도 한다.

그 어떤 마음(예컨대 "부자"라는)이 연결된다고 당장의 재산이 그 이상 늘어
나지도, "빈자"라는 마음이 연결된다고 당장의 재산이 줄어 들지도 않는다.

단지 그 마음(意)이란 것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고 느낌(感, 소위 "감정"이라
고 한다)에 빠지면 그 [삶]이 부자나 빈자인 것 처럼 여겨지고, 그 후의 사고
형성과 실제의 [사람]에도 중대한 영향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마음대로 이루어야만 해(시지프스
마음을 비워야만 해(노자, 장자)
깨달아야 해(붓다)
창조주를 믿어야 해(예수?)
다, [내] 하기 나름이지....(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