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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意), 그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두 뿌리.

나 아닌 내 2024. 11. 29. 07:13

(ㅇㅇ)에 의하여 마음이 생주이멸 되는 (化) 길이 있다.
([내] 스스로(自)]에 의하여 마음을 생주이멸 하는(行) 길이 있다.

예컨대,
어릴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生) 머물다가(住),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서 변하고(異) 그 후에는 점차 사라지게(滅) 된다(化)

또, [내]가 스스로(自) "이 사람(己)의 삶에 어떤 사람과 함께 살면 모두가
화목하게 잘 살수 있을까?" 하는 명제를 확고히 세워 놓고서 상대를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는 식으로 마음을 만들어서(生), 활용하고(住),
때로는 부분적으로 고치거나 바꾸고(異), 그런 마음이 필요없다고 버리기(滅)
한다(行)

살면서 "내 마음 나도 몰라", "나도 내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어" 하는
소리를 -필자는 한 적이 없지만- 간혹 들은 적이 있다.

"마음" 이라는 것에 위와 같은 너무나 다른 두 가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스스로(自)와 대상인 '나(我인 他)를 확실히 구별하여
안다면 위와 같은 소리는 거의 하지 않을 것 이다.
다, 마음의 뿌리(출처)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에서 일어 난다.

[내] 스스로 마음 다루기를 할 자유(自由=스스로 말미암을)를 완전히
행사한다면 내 스스로 하여서 된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관여는 커녕 제대로 알지도 못 하는 마음조차도 다루는 일에 전혀
걸릴 일이 없다.

예컨대, 아무리 오래 되고 강한 그리움이나 미움도 [내] 스스로
"인생에 백해무익이니 버리자"고 결정하여 다집하면 되는 일을
무엇이 방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째, "마음"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줄도
모르면서 -마음이 마음이지- 하는 식으로 안다는 믿음에 빠져 있다.
그러니 모르는 마음을 무슨 수로 다룰 수 있겠는가?

둘째, 마음이라는 것을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할 [내] 스스로(自)의
정체를 깨닫지 못 하고, 오히려 마음속 주인공인 '나'를 [내]라고 아는
착각에 빠져있으니, 의사가 환자가 된 것처럼이니......

셋째, 마음을 다룰 필요와 목적, 그리고 숴단과방법을 모르기 때문
이다.

이상 세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이 [블로그]에 누차 실어 놓았
으므로 생략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