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단어의 정의 부터.
무상(無常) : 직역하자면 "없음(無)이 항상(常)", "항상(常)은 없음(無)" 이다.
사전적인 뜻은 1)모든 것이 헛되고 보람없음, 2)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함,
3)모든 것이 그대로 있음(不變, 恒常)이 없이 생주이멸(生住異滅)로 변화함.
무상에 인생을 연결하면 인생무상, 모두(一切)를 연결하면 제행무상 이다.
"인생무상"은 대체로 위 무상의 사전적인 뜻 1)과 유사하게 통용되고,
"제행무상"은 대체로 위 무상의 사전적인 뜻 3)과 유사하게 통용된다.
불가에서 사용되는 무상(無相)은 "변하지 않는, 일정한 모양(相)은 없다(無)"는,
모두가 찰나의 멈춤도 없이 변한다는 뜻 이다.
항상 그대로(常)는 없다는 뜻 이기도 하므로 무상(無常)과 다르지 않다.
모두가 무상(諸行無常)이니, 인생도 무상(人生無常)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단어의 듯을 어떻게 정립 또는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사고(思考)
체계에 엄청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태허(太虛)를 제외한 존재계 일체(諸行)가 추호의, 찰나의 예외도 없이 항상
변하므로(常變) 불변하기를 바라지도 말고, 불변이라고 알지도 말아야 하고,
그러면 변하는 이치대로 적응하며 살게 되어서 편하다는 가르침이 무상의
뜻이 아닐까 싶다.
2천 5백년 전의 인도철학에서 제기된 제행무상(諸行無常)은,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미 공인된지 오래이다.
만물을 구성하는 극초미립자(極超微粒子)의 차원에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움직임이 곧 변화)는 것이 확인되었으니까.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줄을 모르고 불변할 줄 알고, 불변하길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적 절망에 대한 저항이 바로 "(기대한) 보람없고,
헛되고, 부질없다"는 탄식이 아닐까 싶다.
제행(우주 만물)이 모두 무상이니, 한 개인의 바람대로 유상(有相)한게 추호라도
있을 리 없다.
그걸 알고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무상(無常)을 강조했는데,
엉뚱하게 무상(無常)을 모르고 저항하다가 스스로 절망해야 마땅한데도 탄식이나
빠져 있다니.....
사람의 몸 속과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諸行)은 그 나름의 이치(理, 道)댈로 변한다.
[내](사람의 정신)가 그 이치를 알건 모르건, 어떻다고 알건 그 이치는 추호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그 이치와 다르게 알고, 이치와 다르게 변하기/(또는) 안 변하기를 바라더라도
오직 그 이치대로만 변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 변하는 이치를 모르고, 아무 바램도 없이 살아도 그 이치는 그대로
흐른다.
만물은 그 스스로 변하는 이치대로 흐를 뿐, 사람을 상대로 불화하거나 조화하지도 않는다.
오직 사람의 정신만이 만물의 변화하는 이치에 적응(수용적, 조화적), 대응(도전), 반응(적대,
불화)할 뿐 이다.
인생무상의 뜻을 올바르게 정립하여 삶에 적절히 활용하는 정신은 현명하고, 그런 정신의
소유자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