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唯我)에 독존(獨尊 ; 홀로 존귀하다)을 연결하여 유아독존(唯我獨尊) 이라
하는 사람은 많아도 독존(獨存 : 홀로 존재한다)을 연결하여 유아독존(唯我獨存)
이라고 하는 사람은 본 기억이 (아마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唯我獨尊이 맞고 唯我獨存 은 틀린 말 이라고 하기도 한다.
"[붓다]가 그 어머니의 옆구리로 나와서 일곱 걸음을 떼고서 했다는 말"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 아래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실제로 그랬
는지, 그게 과연 있을 수 있는지도 논외(論外)로 하고 불교계에선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전제에서 본다면 그게 맞는 말 이다.
반면에 "하늘 위 아래를 막론하고 나는 오직 홀로 존재한다"는 문장으로 만들어서
쓰는 일의 효용가치 여하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
독존(獨尊=홀로 존귀하다)은 그대로 두고, 새로 독존(獨存 = 홀로 존재한다)을
만들어서 쓰는 것이 사람의 삶에 유해하지 않고 유익하다면 굳이 시비(是非)를 따질
실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손(實損)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 타자를 존중하는 마음은 보잘것 없는 대신에 자존심에는
얼마나 목마른가?
그런 심리적 바탕에 "나 홀로 존귀하다 /남들은 보두 존귀하지 않다"고 부채질
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나만 걱정인지....
다른 한편으로 아는 일을 하는 "[내]가 알려지는 '것' 모두와 따로 홀로 있다"고
하는 개념을 만들어 놓고 과연 그렇구나....하고 확인, 수긍하면 집착과 해탈,
속박과 자유라는 범 인류적 숙제를 단번에 해소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된다.
이 몸의 두뇌 속 [내] 앞에는 의식계라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는 '나', '너', '그'라는 세 가지 인칭으로 불리는 온갖 무리(衆生)가 있다.
그 세계(의식계)를 실제처럼 아는 것이 동일시(同一示)이고, 그 무리 속에 [내]가
있다고 아는 것이 바로 착각이고, 그로써 발생하는 환상적 경험이 바로 부자유,
속박이고, 그걸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참선, 명상등 깨달음의 추구(求道)이다.
그런데 그 의식계를 대상으로 삼아서 보고 있는(觀心) [내]는, 언제나 이 곳(此岸)에
홀로 있다고 깨달음이 독존(獨存)의 자각(自覺)이다.
그러면
주고 싶은 나도, 받고 싶은 나도 [내] 아니다. 고로 못 주는 나도, 못 받는 나도.
그리워 하는 나도, 미워하는 나도 [내] 아니다, 고로 괴로운 나도.
그러니, 홀로인 [내] 자유를 무엇이 속박하고, 무엇에서 해탈하랴.
천상천하애 내 혼자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온갖 중생(衆生)이 머무는
의식계의 저 자리(彼岸)가 아닌, 이 자리(此岸)에 [내] 홀로 존재한다는 뜻 이다.
이런 개념이 누구를 해치는가?
소위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에게 실익이 적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