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되기(識)를 바라는(望) 마음(意慾)"을 욕망이라고 하자.
당연히 "현실이 아닌 가상적 정보(想識)"가 대상이고 목표이다.
이 욕망이 해소되지 않으면 불만, 불편, 부작용 등으로 불행이 경험된다.
그러니 욕망은 가급적 조기에 깔끔하게 해소되겠금 하여야 하고, 그럴
자유와 책임은 오직 [내] 스스로에게만 있다.
가. 욕망 자체에는 그걸 해소할 능력이 없으니 책임도 없다.
나. 그 욕망(意識)의 주인공인 '나' 에게도 능력, 책임이 없다.
다. 그 욕망을 담고 있는 두뇌의 소유자인 자기(전체)에게도 능력, 책임이 없다.
라. 오직 그 자기의 일부로서 스스로 행위하는 유일한 주체인 [내](두뇌 속 정신)
게만 욕망을 해소할 능력이 있으니, 그럴 책임 또한 오직 [내]게만 있다.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긍한다면 실행 내지는 실현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괴로움, 시련, 불편, 불만등에 시달리는 일은 크게 줄이거나 나아 가 왼전히 없앨
수도 있다.
가. 실행 못 하거나, 실현되지 않을 욕망을 스스로 만들지 않음은 물론, 그런 욕망이
생겨 나 있음을 용인하지 않을 것 이니까.
나. 필요하고 유익한 적정한 정도의 욕망만 만들어서 합목적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실현하려 할테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욕망의 적체(積滯)와 그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첫째는 욕망이라는 것의 정체, 그 것이 자기 두뇌 속의 숙제라는 것을 모른다.
둘째는 그 욕망이 누구의 무엇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모른다.
셋째는 그 욕망을 해소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를 제대로 모른다.
넷째는 욕망을 포함하는 마음(意識, 意思, 意圖, 意向등...) 일반을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하는 유일한 행위주체인 [내] 스스로(自) 깨닫지(覺)를 못 할뿐만 아니라,
그 욕망(意識) 속의 주인공인 '나'를 [내] 스스로인 것 처럼 착각에 빠져 있어서다.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외적(外的)인 성취(成娶)와 내적(內的)인 해소(解消)
두 가지 방법 뿐 이다.
성취는, 두뇌 외부의 상태를 대상으로 육체적 작용(표정, 발언, 행동, 작업등)을
가하여 바라는대로의 결과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해소는, 두뇌 속 욕망의식의 상대적 언어(意) 부분에 - 안 될일, 못할 일, 안됄 일
이라는 등등의 - 판단을 붙이고 거기에 백해무익 이라는 결정적 결론을 추가하여 바라는
마음을 없애는 방법이다.
성취가 필요 유익하다면 효율지향의 실행에 나서고,
성취가 불가망, 불가능, 불가당이면 바라는 마음만 제거하는 해소 작업에 나선다.
이상 두 가지 방법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욕망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제시해 보시라)
위의 두 가지 방법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내] 스스로의 자유이고 책임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 함은,
남 에게서 부정적인 평판이 아니라 -잘 났다, 좋다, 잘 한다, 훌륭하다, 옳다, 착하다,
의롭다 등등- 긍정적인 평판을 받고 싶은 욕망이다.
그런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받지 못 하면 기분이 나쁘고, 악평을 들으면 분노가
치솟는 것은, 내면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은,
가.남으로 부터 인정을 받아서 성취하려면 [내]가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 노력이
결정적인 효력을 발생하지 못 하고 남의 마음대로에 달린 경우가 더 많아서 어려운
문제로 적체되기 일쑤다.
나. [내] 스스로 '나'에게다, "인정한다, 남의 인정은 필요없다"는 말을 연결해 줄
수도 있다.(남의 말 보다 더 강하게 진지하게)
인정받지 않아도 [내] 스스로 할 일에만 주의와 노력을 집중하는게 옳다고 마음을
고쳐 먹을 수도 있다.
남으로 부터 인정받을만한 꺼리도 없이 "나도 인정받고 싶어" 하고 바라는 짓 이나,
남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이미 "상당한 능력이 있다"고 자인하는 사람이 남의 인정
여하에 목 말라 하는 것 모두가 우매한 바보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