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自愛) : "내 스스로(自) 주체로서 사랑한다(愛)"는 뜻 이고,
자학(自虐) : "내 스스로(自) 주체로서 학대한다(虐)"는 뜻 이다.
무엇(목적어, 객체)을 사랑하고, 학대하는지는 내용으로 없다.
여기서 "사랑(愛)"은 "생명체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함",
"학대(虐)"는 "생명체의 삶에 해로움이 되는 일을 함" 이라는
뜻 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타인이 아닌 자기라는 사람을 기(己)라 한다.
자기(己) 스스로, 자기(己)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학대할 수도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검토해 보면 너무나 이해하기 쉬운 반면에, 논리적
검토가 없으면 너무나 곡해(曲解)에 빠지기 쉽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수도, 학대할 수도 있다"고 알면서, 과연 실제로
그럴 수 있는지 추호의 의문도 없다.
쉬운 예로 지구가 지구를 돕거나 해칠 수는 없다.
지구 아닌 다른 무엇이나, 지구 속의 무엇이(일부가) 그리 할 수 있을 뿐
이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거나 학대할 수는 없고, 타인이나
자기의 일부가 자기를 사랑하거나 학대할 수 있을 뿐 이다.
그 일부가 바로 그 사람의 두뇌 속에서 온갖 일을 하는 정신, 곧 [내]
스스로(自)이고, 그 [내] 스스로(自) 아닌 자기(己)를 사랑하거나
학대할 수 있을 뿐 이다.
그런데 [내] 스스로(自), [내] 스스로(自)가 아닌 자기(己)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己)를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자기를 사랑(愛己)하지] 못 하고, 엉터리 "자기를
사랑하느라" 오히려 [참 자기]를 해치는 일(虐己)]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자기 학대(虐己)]는 그 스스로 알기로는 "자기 사랑(我愛)" 이다.
예컨대, 소위 주벽, 도벽, 마약습관 등등은 그 모두가 "술 마시고 싶다",
"도박하고 싶다", "마약에 취하고 싶다"는 나(我)의 욕망이 [자기(己)]인
것 처럼 동일시 되고 있어서다.
그걸 따르지 않으면 발생하는 괴로움이 마치 자기의 괴로움인 것 처럼,
그걸 따름으로써 괴로움이 해소되는 순간이 마치 자기(己)의 즐거움인
것 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게 "자기 사랑(我愛)"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해치는 [자기 학대(己虐)]일 뿐 이다.
내(참 정신), 참 자기(己), 나(我) 이상 세 단어의 뜻을 정확히 구별
할 줄 안다면 [내] 어찌 참 정신으로서, 참 자기를 사랑함에 소홀하고,
참 자기를 추호라도 학대하려 하겠는가?
반면에 [내]가 스스로(自)를 깨닫지 못 하고 '나'(我意識)를 [내]라고
착각하거나 참자기(己)라고 동일시에 빠지게 되면 참 자기를 학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