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여김"은 "여기지 않음"과 상대적인 언어, 즉 두뇌 속 마음이다.
두뇌 속 어떤 정보(識)에 딴 정보(識)를 상대적으로 연결하여 상대적 언어(意)를
만들어 냄을 여김이라 한다.
예컨데, 딴 것과 크기를 비교하여 "크다"/ "작다"고 여김. 평기기준을 적용하여
"좋다"/"나쁘다"고 여김, 판단기준을 적용하여 "옳다"/"그르다"고 여김, 등등이다.
이 "여김(意)"이 부가된 정보(識)를 의식(意識)이라 하고, 그 의식이 근거인 두뇌
밖 사실(실제 존재)에 투사, 투영되면 사실 자체가 그런 것 처럼 보임을 "여겨진다"고
한다.
이 :여김"이란 단어의 뜻(두뇌 속 意識)을 다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겠다.
1. [내] 스스로(自) [여김]
[내] 스스로 어떤 정보(識)를 상대적으로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기
위해서- 작업하여 상대적 언어(意)를 형성해 냄을 [여김]이라 한다.
그런 작업을 스스로 하지 않음을 [안 여김] 이라 하고.
2. [내] 관여없이 저절로 "여겨 짐"**[여김]이** 선행 원인이라면
[여겨 짐] 이라는 후속의 결과가 있어야 정상이다.
그 [여겨 짐(결과)] 또한 [내] 스스로 확실히 알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내] 스스로의 [여김]도 없었는데, [내]가 알지도 못한 사이에 형성된
"여겨 김"이 [내] 앞에 등장했을 때, 그 원인인 [여김]인지 "여김"인지는 과연
누구의 무엇이 만들었을까?
바로 [내] 아닌 타인의 관여이다.
어릴 때의 부모를 포함하는 성장환경, 경험과 배경인 학습등으로 형성된
상대적 언어(意)들이 의사를 형성하는 사고(思考) 과정에 광범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만든 [여김]과 [여겨 짐]은 내가 모를 수도, 다루기 어려울 수도 없지만,
[내] 스스로 만들기는 커녕 있는 줄조차 몰랐던 "여겨 짐"(결과)을, 그 것도
마치 [내] 스스로 [여김]인 것 처럼 혼동에 빠져있다면 어찌 다룰 수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그 두뇌 속에 엄청나게 많은 "여겨 짐"을 안고 살아 간다.
그 정신인 [내] 스스로 필요하고 유익하다고 만든 것도 아니고, 실제로도 자기
인생에 무해유익한 것도 아닌 "여겨 짐"이 마치 쓰레기 산 처럼 쌓여 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유일한 배우자 사이에도,
심지어는 독신자의 두뇌 속에도 온갖 사람끼리의 "여겨 짐"이 숙제인지, 숙명인지
쌓여 있다.
고마운, 그리운, 보고픈, 미안한 사람으로 "여겨 짐",
얄미운, 끔찍한, 꼴 보기도 싫은, 보복하고픈 사람으로 "여겨 짐" 등등이........
그런 "여겨 짐"에 끄달려서 소중한 정신력(애), 체력(기), 자본력(財)을 낭비함이
백해무익이구나...하고 [여김]을 할 수 없어서 못 할까, 게을러서 안 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