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까르트]가 하였다는 말 자체의 뜻을 내 알지 못 한다.
번역으로 알려진 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지만,
[데까르트] 본인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내] 알 길이 없고,
번역한 말의 뜻 조차도 따로 알려지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니 이하의 글은 순전히 필자 나름의, 어쩌면 독단적인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 말에서 사용하는 행위 주체를 자칭하는 이름에 [내]와 "나" 둘이 있다.
그 둘 중에 어느 이름으로 스스로(自) 주체로 나서고, 어느 이름이 피동적인
객체로 등장하는가를 검토해 보자.
1) "내(주체)가 아는 나(객체)" 라고 함이 통상적이고 무난한가,
2) "나(주체)가 아는 내(객체)" 라고 함이 그런가?
대체로 위의 1)에 동의하리라 보고, 생각하는 주체를 "나"라고 칭하지 않고,
[내]라고 칭하기로 한다.
그런 다음에 "내가 생각한다, 그래야 [내]가 명실공(名實共)히 존재한다"는
말로 바꾸어 보자.
역(逆)으로 말 하자면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실질적으로는
존재한다 할 수 없다"고 하게 된다.
"옛 사랑을 그리워 하는 나(我相, 我意識)"가 [내] 앞에 떠 올라 있다.
[내] 스스로 깨닫고(生覺하고) 그 '나'를 보면 그걸 다루는 주체 노릇을
할 수가 있지만,
[내] 스스로 깨닫지(生覺) 못 하여, 그 '나'가 [내]인 것 처럼 착각(錯覺)에
빠지게 되면 그 '나'를 다룰 수 있는 주체다운 [내]는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된다.
[내]가 엄연히 잠 들지 않고 깨어 나 있지만, 실제로 [내]다운 일을 하는
주체로서의 깨달음이 없으면, 실질적으론 [내]가 없는 것과 따름이 없다는
뜻 이다.
마음을 다스려라,
고뇌에서 해탈하라,
정신차려라,
이런 등등의 소리는 드물지 않게 주고 받지만, 막상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하고 듣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니 공염불, 헛소리일 수 밖에 있겠는가?
알려지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내] 스스로의 깨달음(覺)을 낸다(生)는 뜻이
생각(生覺)이고, 그걸 해야만 정신(순수한, 맑은 神)다운 실질적 주체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데까르트가 말한 뜻 이라고 본다.
그렇게 보면 실익이 어마 어마하게 크지만,
우매한 정신은 기계적, 즉흥적, 습관적인 '나'의 마음이 [내] 스스로의 뜻(自意)
인줄 맹신, 맹종하느라 백해무익한 쓰레기 소리만 남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