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과 "그 곳" 또는 "저 곳"의 구별은, 그걸 구별하여 말 하는 자의 소재 여하에
달려 있다.
예컨대, [내]가 있는 곳을 "이 곳(此岸)"이라 하고, [내]가 없고 딴 무엇이 있는
곳을 "그 곳" 또는 "저 곳(彼岸)"이라고 한다.
따라서 [내]는 언제나 "이 곳(此岸)"에만 있고, 그 어떤 경우에도 "그 곳"이나
"저 곳"에 실제로 있을 수는 없다.
단지 지금이 아닌 이전에 있었거나(기억), 이후에 있을 것(상상) 이라고 말 하는 경우
가 있지만, 그 것은 [내]가 아닌 의식계의 '나'의 소재를 말 할 뿐 이다.
[내(自)]는, 그 언제라도 오직 의식계의 건너편인 이 곳(此岸)에만 있을 수 있고,
'나(我)', '너', '그'등등 모두가, [내] 건너편인 "그 곳", "저 곳"(此岸)에만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런데도 거의 모든 인류가 아직도 이상과 같은 실상(實相)을 모르고, 환상(幻相)을
실상인 줄 알고 있다.
첫째, [내] 스스로를 깨닫지(자自覺) 못 하고, [내]게 알려지는 '나'를 [내]라고 착각에
빠져서 미로(迷路)를 헤맨다.
둘째,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 있는 이 곳(此岸)을 모르고, '나' 있는 저 곳(彼岸)을
이 곳(此岸)인 줄 알고 환상적인 부자유, 속박, 감금에 시달리면서 해탈하려고 피안
(彼岸)을 찾고 떠나려 하지만 환상속에서 무슨 실상을 만나겠는가?
비유하자면, 고요한 산장에서 앨범을 펼쳐 놓고 보고 있는 사람이, 엘범속 등장인물과
배경 속에 제가 함께 있는 것 처럼 착각에 빠져서 희노애락에 요란을 떠는 것 처럼이다.
[내] 스스로 이 곳(此岸)에 독존(獨存)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온갖 '나'와 '너', '그'들이
무리지어 사는 저 곳(彼岸) 중생계와 [내]가 따로 떨어 져 있으니 [내]가 잡을 것도,
[내]가 잡힐 일도 없으니 무슨 속박이니 해탈이 있겠는가?
많은 구도자들이 찾아 헤매던 피안에서의 해탈이 이미 이루어 져 있음을 깨닫기가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그토록 찾아 헤매던 피안(서방정토)이 여기 이곳(此岸)이고, 그토록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차안(이 세상)이 피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전도망상 이라는 것을 깨닫기가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