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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無視)의 세 가지 뜻.

나 아닌 내 2026. 5. 21. 16:52

무시(無視), 직역하자면 "봄(視)이 없다(無)" 또는
"없음(無)을 본다(視)"고 하게 된다.
통상적으로는 "있는(有意) 것(識)"을 "없는(無意) 것(識)"으로
본다는 뜻 으로 쓰는 용어다.

가. 목전에 있는 [것]을 눈 감고 보지 않아서 "보(이)는 것이 없다"고,
나. 두뇌 속에 떠 올라있는 정보(기억, 상상인 識)를 보지 않고, 딴 정보를
봄으로써 그 이전의 "떠 올라있는 정보(識)가 없다"고,
다. 마음(意)+정보(識)=의식(意識)으로 보지 않고, 마음(意)을 없이(無)
하여 정보(識)만 무심히 보기.

위의 셋중 그 어느 것도 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봄이 있다는 뜻 이고,
실물이나, 기억,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실물도, 기억도, 마음도
있어서 본다는 뜻이 진실하다.
실물, 기억, 마음이 있는데 없는 것 처럼 조작하여서 본다, 그렇게 안다는
뜻 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바로 인류의 오랜 습성인 [실존재]와 "인지(認知)"의 혼동 때문이다.
[실존재] 자체를 모르고, "인지"를 [실존재]라고 오인,오해, 오판하는
오랜 습성 때문이다.

아무리 실존재가 있어도, [그 것]에 관한 "인지"가 없으면 [그 것]이
있다고 여겨지지 않고, "인지"가 있으면 그 "인지"대로 [그 것]이
실존하는 것 처럼 혼동됨 이다.

반대로 "인지"의 근거가 되는 [실존재]가 전혀 없어도 "인지"가
있으면 그런 "인지" 그대로인 [그 것]이 실존하는 것 처럼 혼동이다.

무엇이 어떻게 실존해 있느냐가 두뇌 밖 [존재]의 차원이고,
무엇이 어떻게 의식, 인지되고 있느냐가 두뇌 속 "인지"의 차원이다.

엄연히 다른 별개의 차원이지만, 오직 "인지" 그대로가 [실존]하는
것 처럼 여겨지기만 한다.
그 반대인 [실존] 그대로가 "인지"되는 일은 전무하다.

그 사람의 안(두뇌 속)과 밖(두뇌 바깥)에 무엇이 어떻게 [실존]해
있는지 [내]가 전혀 모른다.
오직, 이 몸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떠 올라있는 의식 그대로 "인지"
하여 알 뿐 이면서, 그 걸로 그 사람의 [실존]을 아는 것 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지되는 그대로"를 실제로 존재하는 줄 안다.
이런 오인, 오해, 오판을 깨달아서 아는 사람이 극히 희소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