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신이 두뇌 속 의식(意識)으로 하는 일을 인위(人爲)라 한다.
당연히 본능적인 행위는 제외된다.
사람의 두뇌 밖에서, 사람의 의식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을
사람의 관점에서는 무위(無爲 : 人爲가 없다는 뜻),
사람 이외라는 측면에서는 [저절로 그러 함](自然)이라고 한다.
무위와 자연을 합친 주장을 무위 자연설(無爲自然說)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 중에 본능적인 일을 제외한 모두는 인위
(人爲)말고는 없다.
즉, 무위도 자연도 사람의 정신이 스스로 할 수는 없다.
무위를, 자연을 따르려 한다면, 먼저 "무위(無爲)"라는, "자연(自然)"
이라는 의식부터 만들어 놓고서 그걸 실천해야만 한다.
자, 그렇다면 그런 "무위 자연(無爲自然)" 의식을 실천하는 일이
인위(人爲)가 아닌 무위이고 자연인가?
이름만 무위이고 자연일 뿐, 의식적인 행위 즉 인위(人爲)인가?
주로 노장(老莊) 사상에서 주장하는 "(인위를 떠나서) 무위 자연으로"
라는 [슬로건]은 인위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거나 강조하고, 인위의
긍정적인 측면을 안 보거나 경시한 오류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인위(人爲)없이(無)는 물론이고, 자연(自然)에 전적으로
맡긴채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기 어렵지 않다.
개인의 범위에 속하는 인위(人爲)와 그 범위 바깥의 자연(自然)은
선택적 택일이 허용되는 차원이 아니라, 관계적 조화와 불화가
문제될 뿐 이다.
그 것도 인위가 주도하는 식이 아니라, 자연(그 섭리)에 인위가
적응하는 관계여야 함을 강조함이 지나쳐서 인위를 전적으로
무시 내지 경시하는듯한 무위 자연설이 주창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가. 인위와 무위(자연)는 택일(擇一)할 차원이 아니라 조화를 지향할
문제의 차원이다 .
나. 인위로 자연을 거부, 배척, 도전하는 일은 백해 무익이다.
다. 자연에 적응하는 인위라야 사람에게도 필요 유익하다.
위 "나'의 인위는 부정(否定), "다"의 인위는 긍정(肯定)하고,
자연(自然)은 가급적 그대로를 알려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