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일을 하는 주체인 [내]가, [내] 스스로를 -객체로 삼아서- 알 수 있을까?
인류의 오랜 숙제이다.
소위 "내를 찾는 여행"은 아직도 미결의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내를 찾는 여행에 나선 사람이라니, 그가 찾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1).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무언가(객체)를 "내"(주체)라고 찾아 헤매는 걸까?
2)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내] 자신(주체)을, 딴 데서 찾는 바보같은 짓 일까?
이미 스스로(自) 아는 주체로 있는 [내]가, [내] 스스로(自)를 객체로 하여
알 수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모르고, 알 수가 있을 것 처럼 오해에 빠져서
불가능한 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소위 "진정한 내(眞我라고도 함)를 찾는
구도 여행"이다.
진정한 내(眞我)는, 진정하지 않는 나(假我)가 아니라는 뜻 이다.
더 쉽게 말 하자면, 두뇌 속의 유일한(唯我) [내](自, 主) 앞에 무수한
'나'(他, 客, 彼, 被)가 등장해 있을 때,
[내 스스로](주체)와 '나' 의식(객체)을 정확히 구별하여 알고 있으면 진아니,
가아니 할 일이 없지만,
[내]가 스스로를 모르는 줄도 모르고, '나'를 스스로인 줄 안다면(착각)
그럴 때 '나'는 가짜라 하게 된다.
덩 달아서 [내]는 진짜라 하게 되고.
실제로는 [내](정신 스스로)와 '나'(我意識)가 있을 뿐, 진짜도 가짜도 없지만.
정리하자면,
아는 [내](주체)게 알려지는 그 어떤 '것'(객체)도 [내] 아니다(否定).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控制) 남는 유일무이한 주체가 바로 [내]
이다.(剩餘)
비유하자면, 앨범에 있는 나의 사진 일체를, 지금 그걸 보고 있는 [내] 아니라고
부정, 공제하고 나면 그 사진들을 보고 있는 [내]만이 남게 되니 그게 바로
[내]이다.
오관(五官)으로 직접 접촉할 수는 없고, 오직 논리적 탐구로만 알(깨달을) 수 있는
것이 [내] 스스로(自)임을 차려서 알기는 너무나 쉬우면서 어려운 일 이다.
"알고 나면 / 알기 전엔" 이라는 갈림길이 너무나 위대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