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말(글자)은 "그" 이상의 사실도, 그 이하의 사실도 아니다.
여기서 "그"라 함은 어떤(특정의) 말(소리)이나 글자(형상태)를 한정하는 뜻 이다.
각, 자각, 정각도 모두가 말(글자)로서는 그러하다.
그런데 모든 말은 의식을 표현하는 특수한 기호로서의 도구이다.
그 도구인 기호로 표현하는 의식을 그 말(글)의 뜻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각(覺), 자각(自覺), 정각(正覺)이란 말(글)은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말의 뜻(意識)에는 세 가지 차원을 구별해 볼 수가 있다.
첫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뜻 이다.
둘째는 표현자 자신이 담애 내는 주관적인 뜻 이다.
셋째는 어떤 말(글)을 시청한 사람에게서 해석되는 객관적인 뜻 이다.
보편적인 뜻과 주관적인 뜻, 객관적인 뜻은 같을 여지가 많지만 다를 수도 있다.
보편적이라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두 같은 뜻의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수한 뜻 으로 표현되거나, 해석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말을 표현하는 사람과 그 말의 상대방인 사람, 그리고 주변에서 듣는 사람의 모두가 어떤(특정의) 말의 뜻을 같이 가지고 있다면 표현이나 해석상의 의문이나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말이 보편적인 뜻과 일치하건 일치하지 않건간에.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이 아무리 보편적인 뜻을 담아서 말을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당사자적 객관) 해석이 다르거나, 주변 사람(제3자적 객관)의 해석이 다르면 언어 소통이 원활치 못할 뿐만 아니라, 다소간의 의문과 분쟁도 발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어떤 말의 상대방이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보편적인 뜻 으로 해석하더라도, 그 말을 한 사람(당사자적 주관)의 뜻이 특수해도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말을 할 때는 그 뜻이 확실히 표현되어서, 이해되지 않거나 오해되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각, 자각, 정각의 뜻 풀이에 앞 서서 비교적 장황하게 말의 뜻에 관하여 언급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이하의 글 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뜻은 나의 주관에 있는 것 이기 때문에 보편적인(주로 사전에 실린) 뜻이나 독자 개, 개인의 뜻과 다르더라도 문제삼지 말기를 바란다.
각(覺)이란, 잠(수면)과 대칭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말 이다.
잠 에서 깨다, 깨어나다는 뜻 이다.
깨어 나면 정신 활동이 있고, 잠 들면 정신이 -활동하지 않으니-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불각(不覺), 미각(未覺)이니 하는 상태와 반대라는 뜻 이다.
자각(自覺)은 오직 스스로(自)로서의 깨달음(覺)이라는 뜻 이다.
모든 앎의 대상과 분리된, 모든 앎과도 초월된, 오직 (모든 앎의) 주체로서의 스스로를 깨닫는 것 이다.
이건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깨달음이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같은 뜻 이다.
몸 으로서의 자기가 아니고, 마음으로서의 자신(我意識)이 아니라, 마음을 아는 기능인 정신으로서의 자신의 홀로임을 깨달음이다.
비유하자면 자기라는 하나의 로봇(몸의 비유이다) 안에, 하나의 컴퓨터 모니터(의식표면의 비유이다)가 있고, 그 모니터에 온갖 영상과 문자(소리)들이 명멸하는 것(마음의 비유이다)을, 그 앞의 의자에 앉아서 관찰하는 자(이게 정신의 비유이다)가 스스로만을, 스스로라고 깨닫는 것과 같다.
관찰자인 자신을 제외한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나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스스로의 초월적 위치를 깨닫는 것 이다.
내가 아는 그 모든 것은, 나 에게 알려진다는 그 자체로서, 나의 자리(주체석?)가 아닌 남의 자리(객석?)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므로, 결코 나 일수가 없다고 부인하여 초월하는 깨달음이다.
이 자각(自覺)을 강조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
바로 잠 에서 깨어(覺이) 나 있으되, 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 하여 나 아닌 것(我意識)이 자신처럼 여겨지는 비몽사몽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 대분분 사람들의 나(정신) 상태이기 때문에(이유), 그걸 밝혀서 모든 앎의 주체다운 자유와 책임을 깨달아서 자기와 주변의 삶에 봉사코자 함 이다.(목적)
자각하지 못 한 상태와 자각한 상태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내 세우는 단어가 바로 정각(正覺)과 착각(錯覺)이다.
정각(正覺)이란, 나 스스로의 순수한, 초월적인 깨달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 이고,
착각(錯覺)이란, 깨어 나(覺 상태에) 있긴 하지만, 스스로를(홀로임을) 깨닫지 못 하고 나 아닌 것이 나와 동일시 된 꿈 같은 상태에 빠져 있다는 뜻 이다.
비유하자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시청하면서 화면 속 에서는 영화가 명멸하고, 화면 맞은 편의 이 자리엔 영화와 아무 영향도 없는 내가 -영화와 떨어 져 홀로-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음이 자각이고, 영화 바깥의 일이 거의 완전히 잊혀 진 채 영화 속의 일이 실제의 일 처럼 여겨지면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나 누군가가 자신처럼 동일시 되는 상태가 착각이다.
정신은 일단 깨어 (覺의 상태) 나와 있으면 주체로서 대상을 아는 일(知)을 한다.
아는 일 이란, 바로 주체와 대상을 연결해 주는 일 이다.
그렇지만 아는 일 이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아는 일 이하로 연결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내 앞의 책상을 눈 으로 연결하는 것이 보는 일(관찰)이다.
보는 일 이상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고, 보는 일 정도의 연결이 없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정신이 마음에 떠 오른 뭔가(대상)를 보고 안다고 해서, 그 이상의 연결도 아니고, 그 이하의 연결도 아닌 것 이다.
단적으로,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을 아무리 가까이서 보건, 그 주인공에 그 어떤 강한 의미를 부여해서 보건, 그 영화속의 주인공과, 그 영화를 보는 주체인 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게임이 불변이다.
이걸 그대로 아는(?) 것이 자각이고,
영화를 관람하는 스스로(自)의 망각으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마치 스스로인 것 처럼 동일시되는 상태가 착각이다.
착각이라는 것이 잘못 알았다는 일반적인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자각에서의 스스로(自)를 잘못 알았다는 뜻에 한정해서 자각과 데칭적인 뜻 으로 쓴다.
깨어 나(覺이) 있으면서 자각이 있으면 착각이 있을 수 없고, 착각이 있으면 자각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착각에 빠져서 지옥처럼 헤메며 고생하려면 차라리 정신이 없는 게 낫다(잠에서 깨지 말았으면, 잠이나 들었으면...)고도 하는 것 이다.
자각 이외의 무엇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자각이 없으면 착각에 빠져서 환상의 세계를 헤매면서 스스로 온갖 고초를 실제처럼 겪으면서 자기와 주변을 돕지 못 하고 해치게 된다.
그러니, 자각 또 자각해야 한다.
그 모든 앎의 대상을 부인하고 또 부인하여 궁극에는 아는 "나는 홀로이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를 때 까지, 화두를 잡지도 말고 놓고 또 놓는 노력도 하지 말고, 알려지는 모든 것이 대상세계임을 깨달아서 차안(나)과 분리되어 있는 피안이라고 깨달으면 그만인 일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