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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이 있다" ?

나 아닌 내 2019. 10. 21. 12:06

"내가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이 있다"나,

"내가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은 없다"나,

모두가 하나의 말(형식)이다.


그런 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두뇌 속에 있다가 입으로 나오면 그런 소리(말 형식), 손 끝으로 나오면 그런 형상(글 형식)이 된다.

자, 그렇다면 그런 형식(음성, 글자)의 말에 연결되어 있는 두뇌 속의 실질인 뜻(意識)은 무엇인가?

그런 말 형식을 두뇌 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에 따라서 각인 각색이리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내"가 무엇으로서의 자칭(自稱)하는 이름인지?

내가 다스릴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마음"이 무엇을 지칭하는 이름인지?

마음을 "다스림"이 어떤 것 이라는 설명이 무엇인지?

이상 네 가지의 뜻이 명확해져야 소위 "마음 다스리기"를 이해하고, 실행에 착수할 수가 있을 것 아닌가?


"내"는, 두뇌 속 의식계와 마주 대(相對)하여 있는 정신 기관이 스스로를 자칭하는 이름이다.

잠들면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포함하여-  아무 것도 모르고, 깨어 나면 의식계의 모니터(?)를 대하여 아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이 말(두뇌에서 생성되는 言語가 아닌, 순수하게 내 자신이 만들어서, 주로 두뇌에게 하는 말 이다) 로 두뇌, 감각, 운동등 신경을

부리는 일을 하고 있음은, 스스로 실험으로 확인할 수가 쉽다.


"마음"은 가장 넓게는 두뇌 속 "모든 의식"을 지칭하고, 넓게는 정신 앞에 등장해 있는 "하나의 의식"을 지칭하고,

가장 좁게는 "하나의 의식중에서 그 의(意) 부분"만을 지칭한다.

예컨대, "홍길동 일대기에 등장하는 전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 할 때는 의식(意識)을, "좋아하는 마음"이라 할 때는 의(意)를 지칭한다.


"마음 다스리기"를 정보(識) 다루기와 평판(意) 다루기로 구별해서 보기로 한다.


정보(識) 다루기는 만들기(접촉과 상상), 떠 올리기, 가라 앉히기, 가감첨삭하기로 구별할 수가 있다.

의미(意) 다루기는 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로 구별할 수가 있다.

유의할 것은 정보는 지우기가 불가능하지만 지운 것과 유사한 상태로 만드는 방법이, 그에 의미를 여하히 부여하느냐이다.


이하에서는 가장 좁은 뜻의 마음(정보에 부가되는 평판, 意) 다르기에 국한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인연과의 산물로 형성되는 마음은 내가 만든 마음은 아니지만, 내가 다루는데는 똑 같은 마음이다. 


첫째, 내가 마음 다루는 주체로서(主), 스스로(自) 그 어떤 마음도 다루기(만들기,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고,

그 책임 또한 전적으로 내 부담이라는 깨달음(覺)을 확고히 지녀야 한다.  


둘째, 내가 하는 일은 [자기의 삶을 건강, 안전, 순탄하게 영위해 가기 위한 목적]을 실행, 실현하는 것 이므로, 그에 필요하고 유익한 마음을

가지도록 한다는 방침을 확고히 지녀야 한다.


셋째, 그럼 목적과 방침을 구현함에 장애가 되는 그 어떤 구실, 이유, 변명도 백해무익하다.

특히 "못 다스릴 마음이 있다, 내 마음대로 못 다스린다"는 말들을 가치없이 배격해 없애야 한다.

복잡하다, 어렵다, 힘믇다, 괴롭다 등등의 말 모두가 가차없느 배격의 대상이다.

제대로 알아차리지 않거나 못 해서 나오는 외면, 회피지향의 꾀병소리가 그런 변명이기 때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