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용어로서는 "주인의 물건"이나 "물건의 주인"이 같은 뜻 이다.
물건이 누구(주인)의 것 이냐, 주인이 무엇(물건)을 가지고 있느냐는 뜻 이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한 사람과, 그 외(外)인 물건의 (不對等) 관계가 아닌, 한 사람의 내부관계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괴상해 진다.
사람(주인)과 물건(피소유)의 관게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건, 사람을 주인으로 여기지 물건을 주인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한 사람 내부의 위계(位階)가 있는 것을, 그 위계를 무시하거나 어긎나게 표현하는 말은 하지도 말고, 그리 해석도 말아야 한다.
바로, 이 글의 제목이 그런 경우를 확인하고 바로잡자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마음"은 사람의 두뇌 속 어떤 정보(기억, 상상인 識)에 부가되는 모든 상대적인 -비교어, 평가어, 판단어, 결정어등- 언어 일체를
지칭한다.(언어중에서 명사, 서술어, 보조어를 제외한 말 이다)
여기서 "주인"이라 함은, 위의 마음(의미어, 의어, 意)을 만들고(없애고), 붙이고(떼고), 고치고, 바꾸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그 사람의 기관인 정신- 즉, 내 자신이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 시도해 보면 단번에, 쉽게 확인이 가능하니까.
자, 내가 주인으로서 마음을 만들었으니 주인의 마음, 내 마음이라 해야지, 마치 마음이 주인이고 그 안에 주인 비슷한 무엇이 있는 것 처럼
마음(주인)의 주인(주인공, 진짜 주긴이 아닌)이라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비유하자면, 영화를 만든 주인이니 주인의 영화라 해야지, 영화의 주인공을, 영화의 주인이라 하여서 해석상 혼란이 초래되게 하여서야....
이런 주장을 왜 반복적으로 강조하느냐 하면,
내 자신이 마음을 다루는 주인임을 모르거나 잊지말라는, 그래서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본래의 능력을 계발해 누리게 돕기 위해서다.
성나지 않고 기쁘게, 슬프지 않고 즐겁게, 미웁지 않고 고맙게 살려면 마음을 그렇게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몰라서 실천하지 못 하면, 마음이 하자는대로 하다가 낭패를 만나고, 마음을 억압하다가 부작용을 겪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알고, 마음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자신입을 깨닫고서,
마음을 활기(活氣)롭게 부리는 사람이 기쁨(喜), 즐거움(樂), 사랑(愛)을 느끼고(알고) 불리 수가 있는데도,
그리 하지 못 하여 바라는 바(喜, 樂, 愛)와느 거리가 멀거나 정반대인 오기(惡氣)에 휘둘려서 성남(怒), 슬픔과 실망(哀), 원망과 미움(惡)에
빠져서 집착, 속박, 감금된듯 발버둥치고 헤매는 원인이 바로 그 때문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