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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님, 그리운 사람, 미운 놈이 어디에 있는가?

나 아닌 내 2020. 1. 22. 12:08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본다.

"(그대에게) 고운 님, 그리운 사람, 미운 놈이 있느냐?"고.

"있고 말고, 그런 것 없는 사람도 있나?"는 대답이다.


"지금 어떻게 있는데" 하고 묻는다.

"지금도 생생하게  있다"고 한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기억 속에서 떠 올라 있다" 한다.


"그 기억이 어디에 있는데, 어떻게 아느냐?"

"(아마도) 내 두뇌 속에 의식(意識)으로 떠 올라 있는 것을, 내가 보아서 알겠지..."


"그 "내", "보아서", "안다"는 말의 뜻을 어떻다고 아느냐?"

"내가 내 이고, 보아서가 보아서이고, 안다가 안다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자신으로 스스로 아는 자 임을 모른다.

유일무이하니, 상대하여 알 수가 없는 것이 자연스럽다.

상대하여 알 수 있는 것 모두가 내(주체, 자신) 아님(객체, 他者)도 자연스럽고...


이 몸의 두뇌 속에 "특정 사람에 관한 기억이나 상상이 정보(識)로 있고, 그 정보(識)에 "고운 님"이니, "그리운 사람"이니,

"미운 놈"이니 하는 상대적인 평판(意 = 소위 마음이라고 하는)이 연결된 것이 소위 "고운 님 의식" (약칭하여 고운 님) 등등이다.

두뇌 바깥에는 온갖 사람이 있었고, 있고, 있겠지만 그 중의 어느 누구에게서도 "고운 님"이라는 추호의 기미(機微)도 없다.


두뇌 속에 있는 "그 사람(意識)"이니, 더 이상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더 멀어 질 수도 없다.

몸으로 만나서 악수를 할 수도 없고, 밉다고 따귀를 한대 선사할 수도 없다.

그를 상대로 아무리 원망하고 욕을 하고 미워를 해도, 그건 오로지 그 두뇌의 주인인 자기에게 하는 짓일 뿐이다.


그 의식(意識)중에 기억이나 상상(識 부분)은 직접적 방법으로 고치거나, 바꾸거나, 지우거나 할 수가 없고, 자주 떠오르게 하거나 떠오르지 않게 할 수도 없다.

반면에 그 의식(意識)중의 마음(意 부분)은 단지 내 말만으로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가 있다.


"큰 일"을 "예삿일", "사소한 일"로, "중대한 일"을 "가벼운 일", "하챦은 일"로, "허고싶은 일"을 "하지않을 일"로 등등 무제한으로 가능하다.

그렇게 마음을 고치기, 바꾸기, 버리기를 하면 어떤 실익이 있을까?


그럼으로써, 잊고싶다는 것을 저절로 잊혀지게 할 수가 있고,

이지말아야 할 것을 저절로 잊혀지지 않게 할 수가 있고,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기가 쉽고,

고민, 번뇌등을 해결이나 해소하기가 너무나 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