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더러 하더라.
"여기, 이 것에 문제가 있다"
"바로 그(어떤 특정) 점이 문제이다"
"어디에, 무엇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 보라" 등등이다.
위의 말에 공통적인 것은 "문제"라고 칭하는 것이 그 어딘가, 그 무엇에 있다고 한다는 점 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어디에서, 무엇에서 문제는 커녕 그 낌새나 흔적이라 할 것이 추호라도 발견될까?
불가능 하다.
문제는, 해답과 상대적인 말로 사람의 두뇌 속에만 있을 수 있는 마음(意)의 일종이다.
두뇌 속에 "문제"라는 이름(名)을 달고 있는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그 것을 해결, 해소할 필요와 실익이
있다는 등의 평판(意)이 잠재해 있는 가상정보(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문제의식, 줄여서 문제이다.
예컨대 "수학문제"(名)로 [3 + 5 ](識)의 답을 풀면 100점이란 평가(意)를 준다, 그 해답을 (잠재적인 識) 안에 기재하라.
위와 같은 내용을 칠판이나 시험지에 적어 놓았다고 그게 문제인가, 아니다.
그걸 두뇌 속에 입력하여 "문제"라고 여겨야, 두뇌 속에서 문제가 될 뿐이다.
보지도 못한 사람, 보고도 외면하는 사람, 보고 있으면서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문제라는 의식이고, 그 의식의 욋적인 반영(즉, 의식적인 투사, 투영)이 외부의 문제처럼 여겨질 뿐이다.
이상으로, 오직 있는 그대로의 하나(정대)인 우주이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보고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정신이 -자기 두뇌 속에- 시(時), 공(空)을 만들어서 문제를 만들기도, 만들어 놓고 풀려고 씨름하고, 풀어서
놓는 일을 하기 나름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되리라.
단지, 주도적으로 자유롭게 적극적. 능동적, 목적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문제 다루기(만들기, 풀기)를 하는 정신유형과,
종속적으로, 주어지는 과제를 소극적, 피동적, 맹목적, 즉흥적, 자의적으로 문제와의 씨름에 빠져서 노심초사, 악전고투하는 정신유형의 차이가 있을 뿐 이다.
현명한 정신은 필요유익한 문제를 만들어서 합리적으로 해결하여 삶을 효율적으로 운전해 가지만,
우매한 정신은 필요 유익한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이 외면되고, 불필요하고 유해한 문제가 적체되고 그 것에 속박되는 일이 허다하다.
현명한 사람(그 정신)은 문제를 신명나는 놀이처럼 즐기면서 실속도 충실히 거두지만,
우매한 사람은 문제라고 알지도 못 하는 시련 속에 빠져서 헤메기에 여력이 없지만 실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