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좋아"(를) 할까, 안 할까.......

나 아닌 내 2020. 10. 21. 01:32

좋아, 좋지 않아, 나빠는 제7 심의(心意)로서 이하 "나의 마음"이라 하련다.

그 것에 내 스스로 결정하여 붙이는 "하자", "안 하자(하지 말자)"는 제 8자의(自意)로서 이하 [내 마음]이라 하련다.

 

대부분의 사람들(그 정신)이 위와 같은 구별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착각에, 혼동에 빠져서 -알고 보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시련을 겪는다. 

그 "좋아"라는 나(我意識)를 내 자신이라고 착각에, 그 "나의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혼동에 빠지기 때문이다. 

 

차분히 진지하게 검토해 보자.

내가 알지도 못 하는 사이에 소위 좋은 느낌(好意感. 好感), 나쁜 느낌(惡意, 혐오감)이 생기는 일은 결코 드둘지 않다.

그런 느낌도, 스스로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느껴지는 걸 느낄 뿐이지 않는가?

 

자, 여기서 차분히 진지하게 생각해서 보자.

느끼기에 불편한 느낌을 우리는 사전에 예방하거나, 중도에 그치거나 시정할 수는 없을까?

누군가가 그런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포기해야 할까?

 

필자가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은 단순하고, 쉽고, 수월하다 확신한다.

예컨대 "좋아", "나빠" 라는 등의 "나의 마음"이 내게 알려 지는 순간에 즉시 "일단 멈춤(止) !!" 이라고 두뇌에다 외친 다음에,  그 뒤에 내 스스로의 마음(제8 自意)을 어떻게 만들어서 붙일까를 스스로 정(결심)하는 일이다. 

 

좋아(제7心意)에 [하자]를 붙이건, "안 하자"나 "하지 말자"를 붙이건, 그 어떤 선택도 가능한 내 자유이다.

나빠, 싫어, 미워(그 모두가 제7 心意)에도 마찬가지다. 

좋아에 하자를 붙여서 좋아하건, 하지 말자를 붙여서 좋아하지 않건, 두뇌 속의 내 작업을 어느 무엇이 방해할 수 있으리오.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나면 백해무익한 바보짓은 하라고 유혹하고 강요해도 하지 않을 것 이다.

그렇지만 그게 "백해무익한 바보짓" 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그런 줄 알 수가 없으니......

 

그 것(사람)이 그렇게 있어서 내가 그리 아는 것이 아니다.

그 것(사람)이 이 두뇌 속에 의식화 되어서 알려지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아는 것 이다.

그 것(사람)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인 좋아에다 내가 착각, 혼동에 빠져서 "하기"를 붙여서

하는 것이 좋아하기 이다.

그러니, 그 좋아하기를 할까 말까를 내 스스로 두뇌 속에서 결정하는데 누가 무엇으로 방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