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의 "말"은 두 사람 이상이,
상대와 서로 주고 받는, 소위 "의사 전달의 형식(소리, 글자)"을 지칭하는 뜻 이다.
형식은 약속된 특수한 기호로 된 음성이나 문자이고,
실질은 -형식에 담아서 주고 받는다고 보는(看做)- 의사(意思)이다.
"말을 주고 받는다" 함은,
형식으로는 어떤 음성이나 문자 형태를 내고(주고) 들이는(받는) 일이 있고,
실질로는 말을 낸 사람의 두뇌 속 의사가, 들이는 사람의 두뇌 속에 의사로 전달(?) 되어야 한다는 뜻 인데 과연 가능한가?
결론만 말 하자면 말의 실질인 의사는 두뇌 속에서 내기(出)도 못 하고 들이기(入)도 못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사를 표현(두뇌 겉으로 드러 냄), 전달(두뇌 속에 들어 감) 되는 것 처럼 본다.(看做)
무슨 수로, 어떻게?
말을 만들 때, 형식(기호)과 실질(두뇌 속 의식)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코가 긴 짐승을 보면서 "이 건 코끼리라 하자"고 정하여 기억해 놓고, 그 것을 타인에게 알려 주거나 가르쳐서 함께 쓰기로 한 것이 사람들끼리 "상통하는 말"이 되었다.
"코끼리"라 이름 지은 짐승에 관한 정보(識)가 두뇌 속에 없이 내는 "코끼리"라는 (사람이 발한) 음성,
그 "코끼리"라는 음성을 듣고도 두뇌 속에 그에 해당되는 정보(識)가 없으면 헛소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말을 이름, 서술어, 술어, 통상 말(語)이라 한다.
두뇌 속에 정보(識)들이 상대적으로 연결된 것을 비교(크다), 평가(좋다), 판단(옳다), 선택(취함), 결정(하자)하는 형식으로 된 말이 있다.
이를 의미어, 의어, 통상 의미, 느낌, 마음이라 한다.
특히 어떤 마음의 정체를 알려면 그 이유가 된 상대적인 양면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왜 크다, 좋다, 옳다, 선택한다, 하기로 한다고 하는 지를 알려면 무엇과 연결되어서 그리 말 하는지 알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그런 상대적인 양면중에서 어느 일면에 대한 마음만 표현되고, 다른 일면은 표현되지 않으므로 타인으로선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본인은 좋아서 좋다 한다고 알지만, 상대는 왜 좋다고 하는지 모른다)
예컨대, 너는 월급이 "많아"서 "좋겠다" 하는소리만 듣고서는 어째서 "많아", "좋겠다" 하는 지를 몰라야 정상이다.
월급 액수 그 자체로는 많지도 적지도 않고, 따라서 많아서 좋다 할 이유도 없으므로.
그 보다 적은 액수에 비해서라야 "많아"가, 돈은 적은 것에 비하여 많은 것이 낫다는 가치관이 있어야 "좋겠다"는 말(곧 마음)이 생겨 나올 수 있으므로.
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위 내고 듣는 말을 위와 같은 뜻을 정확히 표현하고, 듣고서 정확히 해석하는가?
자신이 한 말을 상대가 정확히 이해한 것 같던가,
남이 한 말이 쉽게 정확히 이해 되던가?
특히 남의 말을 들으면서 듣는 그 말의 뜻(내는 사람의 두뇌 속 의식)을 그대로 이해하려고 주의나 기우리는가,
아니면, 그 말을 들으면서 자기 내면(두뇌 속 의식계)에서 반응하여 나오는, 예컨대 "듣기싫은 잔소리",
"쓸데 없는 헛소리", "재미없고 지겨운 소리", "복잡하고 산만하여 듣기도 어려운 소리"라는 소음(?)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빠지는 일은 없었는가?
8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 왔지만,
내(自) 지금도 스스로 말을 거의 못 한다. (두뇌가 하는대로 내(自)는 듣기만 하는게 대부분이다)
남의 말을 스스로 이해하려 안 한다.(두뇌가 반응하는 그대로를 남의 말 이거나, 남의 말 때문이라고 안다)
어떤가요?
말 하기도, 듣기도 잘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도 과연 그런 확신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지요?
형식만 말과 다른 글도 마찬가지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