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잘"과 "잘못"은 상대적 언어(意), 즉 사람의 두뇌 속에서만 생주이멸하는 마음이다.
사람의 두뇌 바깥에 있는 어디에도 잘, 잘못이라고 할 사물이나 사실이 없고,
그 어떤 사물이나 사실의 겉이나 속에도 그럴만한 속성이 없다.
사람(그 정신)이 두뇌 속에서 그 어떤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성 작업을 해도,
그 것이 두뇌 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야 입으로 낼 수 있지만, 그 작업 자체는
나타 낼 수가 없다)
어떤 일을 하기 전, 하는 도중, 하고 난 후이건, 두뇌 속에서 상대적 작업(소위 마음 먹기)을 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그런 작업을 하는 내 자신만 알 수 있을 뿐 이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소위 6何) 하는 게 잘 하는 걸까?" 하는 과제를 정해 놓고 검토하는
작업을 "사전에 잘, 잘못을 판별하기"라 하자.
또,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걸까?" 하고 점검하는 작업을
"도중에 잘, 잘못을 점검하기"라 하자.
끝으로,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한 것이 다르게 하는 것(가상)에 비하여 잘 한 걸까?"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사후에 잘, 잘못을 확인하기"라 하자.
이상 세 가지(사전판별, 중간점검, 사후확인) 작업을, 그 정신이 스스로 철저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의 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잘, 잘못을 가리는 일은 누구의 두뇌에나 내재해 있는 본성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정신이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작업과 결과물(?)을 귀챦다고 회피하는 경우에도 잘, 잘못 판단은 일어나게
마련이다.(이게 바로 소위 "때 늦은 후회"의 대부분 이다)
잘, 잘못을 가리는 일을
1) 하느냐(적극), 마느냐(소극)에 따르는 결과적 가치를 적극적 가치, 소극적 가치라 할 수 있겠다.
2) 그로 인한 결과가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유익), 해로움이 되느냐(유해)를 긍정적 가치, 부정적 가치라 할 수 있겠고.
3) 긍정적 가치와 적극적 가치의 결합, 부정적 가치와 소극적 가치의 결합은 무해유익 하지만,
4) 긍정적 가치와 소극적 가치의 결합, 부정적 가치와 적극적 가치의 결합은 무익유해 하기만 하다.
따져서 유익할 잘, 잘못을 가리지 않거나, 따져서 유해할 잘, 잘못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록 잘못하는 일 이고,
그런 일이 없게 함이 잘 하는 일 이다.
이 것이 바로 "잘, 잘못(구별")에 대한 [잘, 잘못] 재평가이지만, 과연 그걸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됳까......?